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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23년간 인도 사역 배정희 선교사 (1) -국민일보

배남준 2016. 11. 25. 11:08



[역경의 열매] 배정희 <1> “낮고 낮은 인도 슬럼가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기사의 사진

싱글 선교사로 23년 동안 인도에서 사역하고 있는 배정희 선교사. 그는 “철저한 낮아짐을 통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낮고 낮은 인도 슬럼가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갈 때마다 하나님 손길 절실함 느껴

 - 지친 이들과 함께 아버지집 가고파


23년 전 소명을 따라 인도로 갔다. 주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그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희로애락이 점철된 삶이었다. 감사하게도 한 번도 그 길로 갔던 걸 후회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의 음성보다 대적(大敵)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살았지만, 추호라도 그분의 존재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등 뒤에 계셨고, 내 앞에서 길을 인도해 주셨다.
 
유엔 센서스에 따르면 2016년 11월 현재 인도 인구는 13억4100만명이다. 수도인 뉴델리가 포함된 연방직할 지역인 델리에는 1868만여명이 살고 있다. 이중 절반가량의 시민이 슬럼가에서 삶을 영유한다. 인도 사회는 빈부 격차가 극심하기로 유명하다.  
 
델리 슬럼가를 방문할 때마다 소설가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가 연상되곤 한다. 큰 소리 나는 싸움, 위협, 도둑, 살인, 폭력, 매춘, 술주정, 본드로 취해 있는 사람들, 장애 아이들, 넝마 줍는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더러운 물이 흐르는 개천 옆에는 오물이 쌓였고 화장터에서 뿜어나는 연기로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로 처참한 상태가 연출되고 있다. 

‘어떻게 똑같은 세상에 삶의 환경이 이다지도 차이가 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슬럼가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난 가능하면 자주 찾는다. 방문 횟수가 늘어나면서 생각도 변했다. 처음엔 처참하게만 느껴지던 슬럼가 속에서도 희로애락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슬럼가는 그 어떤 곳보다도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한 지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허물어진 길거리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란 제목의 가스펠을 부르게 된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중에서) 

내가 인도로 간 것은 낮고 낮은 마음으로, 복음의 불모지인 그곳에서 우리의 진정한 인도자는 하나님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 가난하고 지친 인도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라도 겸손하고 낮은 마음이 절실했다. 낮아지고 낮아졌을 때, 그들은 나를 친구로 받아들였다. 

싱글 선교사로 인도에 살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인도로 가는 그 길은 바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는 주님의 뜻에 따라 인도로 왔지만, 내가 가는 이 길은 영원한 본향인 아버지 집으로 가는 여정이다.

나는 사랑하는 인도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 집으로 가고 싶다. 아버지 집으로 가기 위해선 인도하심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그분의 인도 없인 우리는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내가 깨달은 바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은 철저한 낮아짐이었다. 가난하고 낮은 심령이 되었을 때에만 그분이 보이며, 그분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결국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인도해주셨던 그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약력=△1958년 서울 출생 △한세대학교 목회학과 졸업 △인도 네루대학 사회학 석·박사 △굿피플 인도지부장 △2015년 코이카 대한민국해외봉사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