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칼럼,뉴스,시,그림

박정희 대통령의 말년에 타락으로 영적인 외로움이 영생교에 빠져 -김경래 장로

배남준 2016. 11. 24. 11:34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에 빠진 것은   아버지 주색잡기 때문” 기사의 사진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사무실에서 최순실 부친이자 영세교 교주인 최태민과 관련한 의혹을 설명하고 있다.


-  쵀태민 구국봉사단 여성 10여명 성폭행

-  김경래 장로(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로 보고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에게 빠진 것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색잡기 때문입니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대통령은 타락한 육신의 아버지보다 최태민을 영혼의 아버지로 여기며 존경했습니다.”

김경래(88)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사무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부친이자 영세교 교주인 최태민과 관련한 의혹을 이같이 설명했다.

김 전 국장은 “박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뒤 연예인을 술자리에 불러내는 등 주색잡기에 푹 빠져있었다”며 “그걸 본 20대 처녀 박근혜는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했다. 박 전 대통령이 딸에게 약점을 잡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임기를 3단계로 나눠 평가했다. 1961년부터 65년 6월 한일기본조약 체결까지 1기 초창기.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74년 8월까지 2기 중흥기. 3기는 79년 10월 박 전 대통령 사망까지 3기 종말기다.

3기 종말기에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등한시했다. 관료들은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정보를 보고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눈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당시 박근혜는 만나지 말라는 아버지 하명에도 최태민을 몰래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이 주색에 빠진 틈을 타고 기어들어와 박근혜를 앞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한 게 바로 최태민·최순실 부녀”라고 증언했다.  

김 전 국장이 최태민을 알게 된 것은 1977년 초. 당시 그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마치고 문화방송·경향신문 연수실장 및 기획실장을 맡고 있었다. 

“구국봉사단 여성국장 김모씨와 송모 전 건국대 교수가 수십장의 문서를 들고 저를 찾아왔어요. 피해사실을 조목조목 밝히는데, 김씨는 ‘최태민이 영등포 여관에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했습니다. 새벽 2시에 도망쳤고, 자신과 같은 여성이 한둘이 아니라며 10여명의 이름을 거론했지요.” 

후배기자 2명과 함께 확인해보니 대부분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박 전 대통령 앞으로 친필 편지를 작성했다. 최 목사와 관련한 정보와 비리를 정리해 의전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 전달했다. 김 전 국장은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를 해서 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다.

“편지에 최태민이 진실한 크리스천이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0여개 주요 교단과 신학교에 졸업여부를 문의했으나 최태민 이름은 없었다고 말이죠. 영애 박근혜가 비윤리적인 사기꾼 목사에게 놀아나고 있으니 관계를 끊어야한다고 충고했죠.”  

그는 박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다’고 밝힌 것에 대해 “맹신자, 광신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40년간 최씨 일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박 대통령이 혼을 빼앗기지 않고서는 중앙정보부 보고서를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전 국장은 “박 대통령은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정신과 사상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동안 그들의 행사에 참석하고 도움을 준 것”이라며 “최순실은 최근까지도 수시로 점집을 드나들고 점괘를 받아 박 대통령에게 전해줬다”고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관련해선 “정경유착, 권력에 기대어 살아가려는 최순실이 사회 곳곳에 있다”며 “한국교회도 ‘최순실병’,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부자 된다’는 기복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디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탈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국민 5000만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클린 코리아’ ‘청정 한국’을 만드는 데 이 사건이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전 국장은 1980년 7월 30년간 몸담았던 언론인의 길을 마감했다. 전두환 정권의 강제 해직과 언론 통폐합의 본보기였다.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대변인 제의를 “평생 언론인으로 살겠다”며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초대 사무총장을 거쳐, 현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사무총장 겸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길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장로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