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길 위의 햇살이 여러 번 열렸다 닫히고,
음력의 낮과 밤이 곰팡이처럼 피었다 지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서성이던 말 못할 소문들
갸웃, 돌아가고 나면
무릎 꿇은 간기마저 모두 껴안고
제 몸을 내주곤 했을,
항아리 속, 고요하다
장독대를 무수히 오가는 동안
나를 거쳐 간 수많은 상념들도
발효와 부패의 어느 쯤에서 출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날것들의 거칠고 모난 이름을 호명하며
굵은 소금 한 줌씩 행간마다
켜켜이 뿌려주기도 했다
그 곁에서,
바람도 저마다의 발걸음으로 가라앉곤 하였으리
세상을 건너온 열매들 제 속의 과즙 비워내는 동안
어두운 날짜들 솎아내던 나의 하루는 길었고
봄은 바람의 페이지를 저 홀로 필사하기도 했다
깊고 캄캄하고 끝없는 기다림의
내간체(內簡體)
한
권,
맛을 보자, 묵은 말씀들이 혀끝에서 환해지고
노원숙
당선 소감
“균열 간 항아리는 버림받은 우리네 삶”
살아오는 동안, 때로는 가위에 눌려 죽음 같은 큰 아픔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 때 마다 사랑하는 주님께 뜨거운 기도를 드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균열이 간 항아리는 불완전한 사람에 의해 버림받은 우리네 삶을 닮았습니다. 그때마다 기도와 말씀을 의지해 기도하면 주님의 응답이 들려오곤 했습니다. 세상 한쪽에 깨져 있는 항아리 조각은 어쩌면 저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기쁨은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시를 향한 열정을 더 불태우겠습니다.
△1959년 경북 선산 출생 △대구 계명대 교육철학 석사 △제16회 기독신춘문예 당선
- 국민일보 2016 2016 3.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