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이 끝나갈 무렵, 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이 귀국 즉시 미국 캘리포니아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빨리 오라고, 보고 싶다며 어머니는 울먹였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문제가 있어요. 지금 제 옆에는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동료가 있어요. 그는 돌아갈 집도, 혈육도 없어요. 게다가 전쟁 중에 팔과 눈을 하나씩 잃었어요. 그와 우리 집에서 함께 살 수 있을까요?”
“글쎄다 아들아. 네 마음은 안다만 며칠 정도는 가능하겠지. 어쩌면 몇 달도…. 그러나 평생 그럴 순 없지 않겠니?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세상에 그런 장애인을 언제까지나 함께 데리고 살 순 없을 거야. 괴로운 짐이란다.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할거야.”
어머니의 이 같은 답변에 아들은 무겁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 앞으로 급전이 날아들었습니다. 아들이 호텔 옥상에서 투신했으니 빨리 시신을 인수해 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통화한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니, 어머니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죽은 아들을 만나러 간 어머니는 아들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팔과 눈을 하나씩 잃은 그 동료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한 수많은 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을까요. 두려운 일입니다.
정학진 목사 <포천 일동감리교회>
-국민일보 2016.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