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의 꿈
나무들은 하늘아래 내세울 게 없다
뿌리는 깊이 겨울잠에 들었고,
누더기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과
하늘을 향해 치켜든 마른 손가락들이
겨울바람의 날카로운 칼날과 맞서
온몸으로 흐느끼고 있다
긴긴밤이 깊어갈수록 흐느끼는
나목들의 울음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진다, 그 울림은 마침내
헐벗고 버림받은 자의 기도가 되어
캄캄한 밤의 공간을 넘어 하늘
문풍지까지 두드린다
밤새도록 하늘도 잠 못 이루고
그 기도소리에 귀기울이다가,
가슴속 아픈 먹구름들을
은총의 눈송이로 바꾸어
알몸의 가지와 메마른 손끝에
소망의 꽃송이를 하얗게 뿌려준다,
아, 은혜가 충만한 새벽이여…
겨울잠에 빠진 땅속뿌리들은
포근한 꿈을 위해 언 땅에도
하얀 이불을 덮어준다
남쪽바다에서 파도와 어우르던
봄바람이 불어와 이불을 걷어내면
뿌리들은 남쪽을 향해 귀를 열고
봄의 숨소리를 듣는다
나무보다 먼저 찾아온 봄볕이 가지들의
파리한 손끝을 어루만지면, 마디마디에
눈과 귀가 열리고 봄이 다가오는 발소리와
함께 꽃밭에 날아드는 벌 소리도 들으며
가지마다 파란 하늘을 받들 것이다
이옥자
당선 소감
“말씀으로 참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잎만 무성한 저에게 참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시를 읊고 쓰는 일은 삶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시를 쓰게 될 땐 두려움이 앞서 미뤄두었다가, 다시 젊은 날의 긴 꿈이 상기되어 도전장을 내민 시가 저의 실재요, 존재의 소리요, 삶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소중한 이유를 찾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이제부터 비움의 끝자락이 만져질 때까지 말씀으로 채워가며 참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 할 것입니다.
△1940년 경북 문경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제7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대상
- 국민일보 2016. 3.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