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선교회에서 간사로 6년 정도 일했을 때다. 너무 일에 치어있어서 나도 모르는 새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세상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궁전 안에 있는데도 왕의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때마침 농아인들과 함께 중국 단기선교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처음 마주하는 중국 대륙은 광활했다. 그 땅 위에서 하나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봤다. ‘드넓은 대륙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알게 된다면 어떨까.’ 처음으로 중국이란 땅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일을 그만 두고 중국 선교활동을 갈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출석하던 베데스다나눔교회는 매년 초에 ‘심지뽑기’를 해서 기도짝꿍을 정하고 1년 동안 함께 기도를 했다. 그해 나의 기도짝꿍이었던 형제 두 명 중 한 사람이 지금의 남편 박동호 선교사다. 박 선교사는 당시 배우자 기도를 하고 있었고 나는 하나님께 중국에 선교하러 갈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40일 작정기도의 마지막 7일을 남겨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처음으로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체험을 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보다 더 큰 놀라움은 그 음성의 내용이었다. 줄곧 기도해오던 중국 선교가 아닌 ‘박 선교사와 결혼하라’는 음성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기는 평생 처음이었다.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어떻게 제게 이럴 수 있어요. 예수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신분까지 숨긴 채 공장에 들어가 근로선교도 하고 오직 하나님 영광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때 내 신앙의 민낯을 발견했다.
박 선교사가 장애인이어서가 아니었다. 만약 하나님이 장애인과 결혼하라는 응답을 주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부터 조금씩 생각은 해 왔었다. 그럼에도 그 대상이 장애인이라면 사역의 열매를 맺기에 학문과 경험이 나보다 깊은 사람이길 바라는 인간적인 욕심이 있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할 당시 학력이 초등학교 1학년 중퇴였다. 1학년 때 높은 곳에서 떨어져 장애를 입었기 때문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성실하고 기도에 힘쓰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나의 배우자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결혼에 대한 음성을 들은 뒤로는 교회에서 박 선교사를 마주치기가 두려웠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던 요나가 된 듯했다.
문득 하나님이 내게 이런 신호를 주셨다면 상대방에게도 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만 모른 척하면 그냥 넘겨볼 수도 있겠다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를 배우자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배우자 기도의 응답으로 당신을 주셨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이야기를 숨기고 남편에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희한하게도 그날 이후 자꾸 박 선교사와 연결되는 상황들이 생겼다. 하나님의 예상치 못한 응답에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밀알복지재단의 정형석 목사님을 만나게 됐다. 목사님께서 불쑥 간증도서를 한 권 주셨는데 그 내용이 한 비장애인 여자가 뇌성마비 장애인과 결혼한 이야기였다. 나와 남편의 스토리와 비슷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목사님께서도 똑같은 책을 주셨다. ‘하나님. 이게 진정 당신의 뜻인가요.’ 나도 모르게 무릎이 꿇어졌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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