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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학의 대가 서울대 권태환 교수 / 세상 학문버리고 성경교재 번역

배남준 2017. 3. 25. 15:34

“컴퓨터 자판 두드릴 힘 주시네요… 아직도 쓰임 받아 행복” 기사의 사진

권태환 박사가 23일 오후 강원도 춘천 금병산예술촌 ‘예예동산’ 거실 소파에 앉아 빙그레 웃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시절 이해찬 전 총리와 김민석 전 의원 등을 가르쳤던 ‘대쪽 스승’의 모습은 사라지고 인자한 얼굴만 남아 있다.



“파킨슨병 걸리신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당장 약을 드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년퇴임을 1년 앞둔 2005년 한여름이었다. 권태환(76) 박사는 담당 의사가 심각하게 건네는 말에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그냥 씩 웃고 말았다. 

권 박사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인구학 박사학위를 받고 32세에 귀국해 사회학과 교수가 됐다. 한국의 인구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1970년대였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60년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0년대), ‘둘도 많다 하나 낳고 알뜰살뜰’(80년대) 등 산아제한 정책 구호가 홍수를 이루던 때이기도 했다.


냉철한 크리스천 사회학자, 병에도 의연 

하지만 그는 고령사회를 예견, 산아제한 정책을 강조하던 때 인구 비율의 불균형을 우려했으며 서로 나누는 공동체만이 고령화사회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을 내다봤다. 나눔 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 생활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일 뿐이었다.

정년퇴임이 모든 걸 바꿔놨다. 오래전부터 성경대로의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기도하며 준비해 오던 일을 마침내 결행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파킨슨병에 걸려 공기 좋고 물 좋은 산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건강상 절실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퇴직한 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학교와 집, 그리고 교회만 오가던 서울생활을 모두 정리했다.


“컴퓨터 자판 두드릴 힘 주시네요… 아직도 쓰임 받아 행복” 기사의 사진

파킨슨병과 싸우는 권태환 박사가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자판을 누르며 성경교재(CBSI)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아래쪽은 권 박사의 영원한 동반자인 유명애 권사가 점심식사 후 남편과 커피 환담을 하고 있다.


정년퇴임 후 세상학문 미련 버려  

강원도 춘천 외곽의 금병산 기슭에 둥지를 튼 권 박사는 화가인 아내 유명애(72) 권사와 단 둘이 ‘예예동산’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예수 안에서 예술의 기쁨과 쉼을 누리는 것’이라는 의미와 ‘예수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한다’는 두 가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유유자적하면서도 평생 쌓아온 연구 업적을 마무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3∼4년간 준비한 4권의 책 출간이 임박할 무렵 한 목회자를 만나 세상학문과 영원히 이별하게 됐다.  

2009년 공동체 성경공부(CBSI)를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노에녹(58) 목사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다. CBSI는 나이와 믿음의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공부로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 말씀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 귀한 일이 시작됐으면 좋겠는데, 교재를 번역할 사람이 없어 고민입니다.” CBSI 아시아태평양 책임자였던 뉴질랜드의 피터 한스켐프 목사가 던진 말에 권 박사는 앞뒤 생각지 않고 자신이 번역해 보겠다고 나섰다.

성경 번역, 삶을 바꾸다  

“얼떨결에 자원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귀한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같이 몰려오더군요.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였지요. 그후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끌려 지금까지 이렇게 기적처럼 살아 있습니다.” 

23일 예예동산에서 만난 권 박사는 사회학자로서 자신이 강의했던 사회학방법론의 가장 명확한 진리가 모두 성경 안에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 귀한 일을 맡기시려고 파킨슨병을 주시고 서울을 떠나게 하시고, 오직 번역하는 일만 할 수 있도록 이끌고 계시다며 환하게 웃었다.  

2010년엔 노 목사와 뜻을 함께하는 10여명이 모여 석사동에 한울섬김교회를 창립했다. 모든 걸 예배에만 중점을 두는 교회를 해보자는 취지였다.  

올해 창립 7주년을 맞은 한울섬김교회는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 성도 100명을 넘기면 독립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벌써 2개 교회를 분립시켰다. 교회 창립 때부터 시작한 재능나눔장학회의 도움을 받는 학생은 20여명으로 늘었다.

권 박사는 산골에 와서 배운 게 겸손이라고 했다. 시골에 들어와서 겸손하게 있는 것이다. 그는 파킨슨병의 고통과 싸우는 게 아니라 즐긴다고 했다. 긍정을 넘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시면 바로 ‘할렐루야’라고 외치면서 달려갈 겁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래서 권 박사에겐 짐도 물건도 거의 없다. 예예동산도 이웃을 위해 내놨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권 박사는 특이한 체질이다. 의사가 그렇게 얘기했지만 2015년까지 약을 전혀 먹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았다. 하늘나라로 갈 때 깨끗하게 끝을 내려고 약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산골이 금병산예술촌으로 거듭나 

“요즘엔 약을 최소한으로 복용해요. 마우스로 커서를 옮기고 자판을 칠 때 손가락이 덜 떨릴 정도죠. 사람들이 2016년 못 넘기고 가시는구나, 그랬어요. 그런데 아직도 번역 일을 놓지 않고 있어요.”

권 박사의 영원한 동반자 유 권사의 얘기다. 골치가 아프다가도 번역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픈 걸 잊어버리게 된다고 했다. 예예동산을 시작한 지 올해로 12년째다. 아무도 찾는 이 없던 산골은 금병산예술촌으로 변했다. 옆집엔 소설가 전상국, 앞집엔 한지작가 함섭, 변우현 강원대 교수 등 20여명이 이웃사촌이다.

예예동산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동안 수많은 나그네와 교인들이 이 집에서 잠자리와 식탁을 나누며 권 박사 부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매일 8시간씩 ‘덜덜덜’ 떨리는 열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전하는 일에 몰두하는 권 박사는 오는 27일 광주 세미나에 참석해 간증 겸 강의를 할 예정이다. CBSI 호남 세미나는 이날 오전 10시∼오후 4시 광주 남구 회재로 세움장로교회에서 열린다(koreacbsi@gmail.com·033-261-0695).

                                                                                      춘천=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