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수업이 끝난 후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개방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난한 부모 밑에서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영어와 함께 말씀도 가르쳤다. 당시는 칠판이 없어서 나무판에 까만 페인트를 칠해 사용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120여명의 아이들은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아이들에겐 마음을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거리에서 노는 것보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며 영어공부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이들로 인해 전도된 어른들도 많았다. 영어 학교와 더불어 유치원 사역도 시작했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은 선교 제한 국가인 인도에서 교회가 사람들과 교류하는 접촉점이 됐다. 어린이들을 통해 어른들이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를 받아주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힌디어 설교를 했다. 부족했지만 힌디어로 설교를 하자 성도들이 더욱 말씀을 친숙하게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내게 지교회를 개척하라는 믿음을 주셨다. 하나님이 어떠한 마음의 소원을 주실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래서 마음에 든 생각은 실행해야 했다.
우린 98년 10월 3일 델리의 외곽 슬럼가인 사하드(sahad) 지역에 지교회인 영광순복음교회를 개척했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슬럼가에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졌다.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성도들이 한 둘씩 모여들었다. 처음엔 세 명의 전도사들이 돌아가면서 말씀을 전했다. 악발 전도사를 정식으로 영광순복음교회 전임 사역자로 파송했다. 교회는 시장통 선가티순복음교회와 완벽한 팀 사역을 펼쳤다. 99년에는 청년 사역을 맡고 있던 프렘 전도사가 교회 개척을 위해 펀잡 지역으로 떠났다.
2000년에는 아닐과 비젠드라 전도사를 이슬람권인 사란(saran) 지역으로 파송했다. 이 지역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한 곳이다. 우린 이 지역에 지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1년여 동안 기도하며 준비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아닐 전도사는 니겔순복음교회를, 비젠드라 전도사는 벧엘순복음교회를 개척했다.
때때로 핍박이 있었다. 두 전도사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가서 16시간이나 조사를 받은 적도 있고, ‘예수 영화’를 상영했다가 몰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부흥했다. 살아있는 교회는 반드시 증식하게 된다. 난 시장통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를 꿈꿨다. 그 꿈대로 개척 4년 만에 4개의 지교회를 개척, 사랑하는 제자들을 전임사역자로 파송했다.
시장통 선가티순복음교회가 안정을 찾게 되자 본격적인 제자훈련을 시도했다. 제자들은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갔다. 훈련학교 제1회 졸업생 4명 가운데 디나나트, 하렌드라, 란지트는 주의 종이 되어 교회를 개척했고, 데이빗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사역 하고 있다. 2016년 11월까지 102명의 제자가 세워졌다. 인도에서 사역하기 위해선 보혜사 성령과 동행해야만 한다. 난 매일 새벽마다 졸업한 102명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제자들을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교회가 성장하자 모두 함께 모일 더 큰 장소가 필요했다. 비좁은 곳에서 에어컨도 없이 예배드리는 인도 성도들이 마음껏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2002년부터 땅을 보러 다녔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땅도, 돈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 기도만 했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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