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오취리(Samuel Okyere·25)가 가나의 왕족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건물에서 오취리를 만났다. 목사 아버지를 둔 영향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성경책부터 찾아 읽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오취리는 한국에서의 삶이 기적 같다고 했다.
“한국은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라면서 그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다.
오, 나의 사랑 한국
오취리는 2009년 3월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으니 겨우 18세였다. 당시 가나에서는 ‘대장금’과 ‘호텔리어’ 같은 한국드라마 열풍이 불었는데 서울에서 직선 거리로 1만2640㎞나 떨어진 곳에 살던 오취리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한국이 어떤 곳인지 몰랐어요. 대장금이 일본 드라마인지 중국 드라마인지 알지도 못했고요. 그저 한국정부에서 장학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소개팅에 나선다는 기분으로 신청했는데, 덜컥 뽑혔죠. 소개팅 자리에 누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저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10대 청년에게 한국은 깜짝 놀랄 만큼 발전된 나라였다. 한국전쟁 직후 가나보다 가난했던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잘 살게 됐을까. 비결이 궁금했다. 고려대 어학당을 거쳐 서강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 한국인들의 배우려는 의지와 근면성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572 스쿨’과 티셔츠
오취리는 교육만이 해답이니 고국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5월 월드비전과 함께 자신이 직접 홍보에 나서는 ‘오렌지 액트’ 캠페인을 벌여 5000여명으로부터 7700만원을 모금했다. 그 돈으로 지난달 가나의 소외된 곳 중 하나인 보수소에 아이들 1000명을 위한 ‘572 스쿨’을 세웠다.
그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는 ‘김치와 함께 먹는 졸로프(Jollof with Kimchi)’라는 티셔츠 캠페인을 벌여 수익금을 가나 보육원에 기부했다. 가나와 한국을 각각 대표하는 음식인 졸로프와 김치를 함께 먹으면 상상하지 못했던 맛이 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 미국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조던이 ‘만약(if)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세상의 모든 일은 어쩌다 우연히 생기지 않아요. 제가 한국으로 오고 사랑을 받아 가나를 도울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며 운명이라고 믿습니다.”
목사 아버지와 성복중앙교회, 그리고 성경책
오취리가 타향살이를 꿋꿋하게 버텨낸 데는 아버지 에네스트 오취리 목사의 역할이 컸다. 부친은 주말과 휴일이면 가나에서 청소년을 위한 사역에 헌신한다고 한다.
“아버지는 통화할 때마다 더 겸손하라고 하세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도 하시고요. 하나님은 언제나 그대로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으니 더 기대라고 하십니다.”
그는 주말이면 서울 성북구 성복중앙교회(길성운 목사)를 찾는다.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다닌 교회다. 길성운 목사와 외국인 성도들은 이방에서 온 그에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교회에서 큰 위로를 얻었던 오취리는 이제 교회의 자랑이 됐다. 성복중앙교회 관계자는 “오취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면서 “교회로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오취리는 성경에 모든 문제의 답이 있다고 했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인간관계는 물론 각종 비즈니스나 외교문제와 같은 세상사에 정답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전 일어나자마자 성경을 읽어요. 주일마다 교회에 가고요.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 성경을 들고 기도합니다.”
한국에서의 기적, 꿈은 이루어질까
그래서일까. 오취리는 지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원했던 일은 모두 술술 풀렸다. 얼마 전에는 유엔에서 가나의 일자리 마련을 위한 캠페인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제게 잘했다고 칭찬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제가 한 일이 아니라서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저를 통해 은혜를 베푸셨다고 생각합니다. 전 말씀에 따라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했을 뿐이에요.”
그에게는 더 큰 꿈이 있다. 모두가 가려고 하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가나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려고만 할 뿐 고국으로는 잘 돌아가지 않아요. 전 고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고국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오취리는 예전 한 방송에서 가나의 대통령이 꿈이라고 한 적이 있다. 겸손하고 밝은 에너지로 똘똘 뭉친 예수청년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온라인 편집=최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