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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소아과 의사 - 미얀마 13년 의료선교

배남준 2018. 1. 18. 17:13
부·명예 대신 택한 ‘주의 긍휼 나타내는 삶’ 기사의 사진
장철호 선교사(왼쪽)와 아내 한혜경 선교사(오른쪽 두 번째)가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미얀마 어린이와 가족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어린이는 장 선교사 부부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장철호 선교사 제공

명예와 풍족한 재정 등 직업이 주는 혜택을 그냥 누리기만 하면 됐다. 가난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 적당한 봉사활동으로 상쇄시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가진 달란트를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온전히 사용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1986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91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대학병원에 몸담기도 했고 개원의 생활도 했다. 96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동과 아시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단기 의료선교도 다녔다. 선교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앙을 가진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험은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 방문했을 때 찾아왔다. 무슬림 여인이 울고 있는 어린 자녀를 그에게 데려왔다. 진찰했지만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알고 보니 잘 먹지 못해 배가 고파서 우는 거였다. 사실을 얘기했더니 여인은 주머니에 하나 있는 비스킷을 물에 개서 먹였다. 아이는 양에 차지 않아 계속 울었다.

“저는 약만 가지고 있었기에 먹을 것을 주지 못했어요. ‘내가 대체 누구를 위해 이곳에 와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기선교의 한계도 느꼈죠. 마음에 강한 울림이 있어 귀국 후 집중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죠.”

16일 서울 서초구 신반포교회(홍문수 목사)에서 만난 장철호(57) 선교사는 자신을 선교의 길로 이끈 하나님의 부르심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신반포교회 협력선교사다.

기도 끝에 그는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가장을 본 아내는 어땠을까. “자녀들도 있는데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것이 두려워 남편을 말렸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목사의 딸로 자란 한혜경(57) 선교사는 어릴 적부터 세계 각지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의 삶을 여러 번 목격했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란 그에게 익숙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단어였다. 남편의 결심에 끝까지 반대하지 못하고 동역자로 나섰다.

한국 생활을 정리한 부부는 미국을 거쳐 2006년 중국 단둥(丹東)으로 향했다. 장 선교사는 당시 단둥복지병원 소아과 의사로 섬기며 의료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열악하게 변해버린 환경과 녹록지 않은 현실에 낙담할 때도 많았다.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장 선교사는 체류 중인 탈북자들을 위한 무료진료를 했고, 도시와 농촌에서 빈민을 위한 진료 활동을 했다.

2011년까지 중국에서 사역을 마친 후 다음 사역지를 미얀마로 정했다. 의료선교단체 GIC(Global Image Care)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미얀마의 환경은 좀 더 열악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의료와 교육 사역을 통해 미얀마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명 선언을 하고 본격 사역에 나섰다.

장 선교사는 GIC의 코디이자 지부장을 맡아 현재까지 16차례 400여명의 구순구개열 무료수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중증 화상, 선천성 심장병, 항문 폐쇄 등 현지에서 수술이 어려운 환자는 한국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초청수술을 주선했다.

서울대기독교동문회를 비롯한 선교 모임과 여러 NGO 지원을 받아 2016년 양곤 외곽의 빈민지역 흘라잉따야에 자선병원 ‘베데스다클리닉’을 세웠다. 최빈층 도시이주민 40만명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의료지원이 절실했다. “미얀마는 식습관 때문에 당뇨 발병률이 높고 합병증으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많아요. 그러나 투석 시설이 부족하고 비싸 대부분 환자가 고통 속에 목숨을 잃습니다.”

아내 한 선교사는 언어통역 NGO인 BBB코리아와 함께 양곤KB한국어학당을 설립, 미얀마 청년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부부에게 긍휼을 나타내는 삶이 무엇인지 물었다. “긍휼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들과 동행하면서 짐을 나눠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삶 가운데 만나는 어려운 이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주고, 입을 옷을 나누며 병들었을 때 돌봐주는 일이 긍휼의 삶이 아닐까요.”

장 선교사는 지난 11일 제7회 이태석 봉사상을 수상했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사망한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이태석기념사업회는 2011년부터 이 상을 시상하고 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