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 한국어린이교육선교회 간사로 일하던 24세의 이은옥 전도사는 인도 콜카타를 방문했다. 하띠바간 빈민가를 돌며 전도했는데 수백명의 어린이가 몰려들었다.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부르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도사역을 하려면 3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기도했다. ‘하나님, 뜻이 있다면 이 땅에서 평생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세요.’
인도 어린이 선교에 미친 여전도사
기도 중에 현지 사역자인 수빌 로이 전도사를 생각해보라는 감동이 있었다. 로이 전도사는 신앙의 5대 가문출신으로 서울의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로이 전도사님, 저와 결혼해주세요.” “네?” “로이 전도사님, 저는 며칠 후면 한국에 돌아가야 해요. 그전에 당신과 약혼하고 싶어요.”
며칠 후 로이 전도사로부터 쪽지가 왔다. ‘잠언 31장을 읽으세요.’ 잠언 31장에는 남편을 잘 섬기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이 전도사는 홀어머니께 국제전화로 결혼의사를 알렸다. 어머니가 펄쩍 뛰면서 다시 기도해보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확실했다.
두 사람은 10월 26일 콜카타에서 약혼했다. 91년 1월 2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에서 파송을 받고 이틀 뒤 결혼식을 올렸다. 2월 27일 인도로 돌아왔다.
언어장벽부터 넘어야 했다. 6개월 만에 말문이 트였고 인도어 성경을 암송하니 10개월 만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부부는 이듬해 2월 인도어린이교육선교회(GNCEM)를 설립했다. 콜카타 인근 웨스트뱅갈주 산토스풀이라는 낙후지역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이 선교사는 한 살 배기 아들을 업은 채 자전거를 타고 미취학 아동의 집을 찾아다녔다. 대물림되는 가난을 끊으려면 교육부터 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해 6명으로 시작된 산토스풀 ‘배움의 집’은 금세 300명 규모가 됐다.
부부가 교육용 건물을 세우는 방법
97년 개교한 고아원은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샜다. 비가 새지 않는 2층 건물을 달라고 모든 원생이 기도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데 신명기 6장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님께서 집도, 땅도 주시고 배부르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만 더욱 사랑하자.’
그해 8월 100명을 수용할만한 고아원 부지 9917㎡가 눈에 들어왔다. 돈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땅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신기하게 무명의 후원자 수십 명이 2200만원을 보내와 IMF 외환위기 이틀 전 잔금을 치렀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2001년 건물은 빚 없이 완공됐다.
2005년엔 고빈도플에 100명의 여학생을 수용할 기숙사가 필요했다. 낡은 옷차림의 미국인이 관광을 왔다가 사역현장을 찾아왔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2만 달러를 송금했다. 기숙사를 짓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2만 달러로 기초공사를 한 뒤 조감도를 그 미국인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답신이 왔다. “건물을 완공하려면 얼마가 듭니까?” “20만 달러가 듭니다.” “좋습니다. 내가 다 보내줄 테니 공사 시작하세요.” 2008년 2월 기숙사가 완공됐다.
기아대책과 손잡고 사역의 날개 달아
시간이 흘러 이 전도사는 51세, 로이 전도사는 56세의 목사가 됐다. 부부는 2011년 기아대책과 연결되면서 ‘선교’와 ‘구호’라는 양 날개를 달았다. 학교에 기아대책 CDP(아동개발프로그램) 센터를 설치하고 420명의 아동을 돌본다. 이 선교사는 외국인 최초로 2013년 콜카타 산하 기관에서 수여하는 사회봉사상인 마더 테레사상을 받았다.
이 선교사 부부는 9개 정규학교와 영어학교 6개, 고아원 2개, 영아원 1개, 빈민가 구걸 아동을 위한 이동식 학교 2개를 운영하고 있다. 부부가 유급직원 120명과 함께 돌보는 아동만 3500명이다. 4층 높이의 의료센터도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로이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인 아내는 주님의 일이라고 한번 선포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도로 끝까지 해낸다”면서 “아내는 늘 하나님의 일을 찾는 슈퍼우먼”이라며 웃었다. 그는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인도를 분명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교육으로 가난의 고리를 끊었다 해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또 다른 정서적 가난에 허덕이게 돼 있다”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게 영육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요즘 교육대학을 세울 부지를 찾았다. 물론 이 땅을 살 돈은 없다.
콜카타(인도)=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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