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군목 블레이즈델 중령-
1950년 9월 28일 되찾은 서울 거리는 고아들 천지였다. 미 공군 군목 러셀 로이드 블레이즈델(1910∼2007·사진) 대령(당시 중령)은 부모를 잃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그는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 부관이었던 마이크 스트랭 선임상사의 도움으로 매일 아침 서울 거리의 고아들을 고아원으로 옮겼다.
12월 초 중공군이 개입하자 연합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미군도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블레이즈델 대령은 후방으로 떠나는 군부대 트럭에 고아들을 보냈다. 그래도 1059명의 고아들이 남아있었다. 그는 고아들을 제주도로 옮길 계획을 세웠고 인천서 제주까지 운행하는 선박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12월 15일부터 트럭 한 대로 사흘 밤낮에 걸쳐 아이들을 인천항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선박은 소형인 데다 파손돼 있어 아이들을 태울 수 없었다. 간절함 속에 찾아간 곳은 서울의 미 제5공군사령부였다. 작전참모 로저스 대령은 “16대의 C-54 수송기 편대가 미국에서 지금 막 일본에 도착했다”며 “수송기들을 김포공항으로 부를 테니 내일 아침 8시까지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블레이즈델 대령은 인천으로 돌아가 밤새 인근 지역을 다니다 미 해병대 트럭 14대를 발견, 고아들을 모두 김포공항까지 옮길 수 있었다. 1000명이 넘는 고아들은 무사히 제주로 피신하는 데 성공했다. 1950년 12월 20일 실시된 한국전쟁고아 구출작전, 일명 ‘유모차 공수 작전(Operation kiddy car)’이다.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 블레이즈델 대령 별세 10주기를 맞아 사회복지법인 충현원(대표 유혜량 목사)과 재외동포연구원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추모식과 국제학술포럼을 개최하고 “블레이즈델 대령이야말로 한국 전쟁고아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추모했다.
블레이즈델 대령의 장남 카터 블레이즈델 목사는 “아버지는 생전에 마이크 스트랭 선임상사의 도움 없이는 아이들을 구할 수도, 보살필 수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며 “선친은 해군 트럭을 구해 고아들을 김포로 수송했고 미군 조종사 딘 헤스 대령의 도움으로 무사히 제주까지 피신시켰다”고 말했다.
유혜량 대표는 “전쟁이 끝난 뒤 1000여명의 고아를 구해낸 블레이즈델 대령의 사랑이 잊히고 말았다”며 “딘 헤스 대령이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로 부각돼왔지만 실제 구출작전을 세우고 실행한 이는 블레이즈델 대령이었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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