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동성애자라니…." 절망감으로 온 몸이 떨렸다. 더 이상 동성애를 하지 말고 가정으로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이즈에 감염됐고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993년 지인의 소개로 결혼해 딸 둘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던 차승희(49·갈보리채플서울교회) 전도사의 20여년 결혼생활 이야기다.
차 전도사가 남편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알게 된 건 결혼 13년째였던 2005년 봄. 남편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다.
“처음엔 누가 잘못 보낸 문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또 문자를 보게 됐는데, ‘여보’라는 말로 시작한 문자 내용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부부간에나 사용할 만한 말들이 오갔거든요. 누가 선물한 듯한 금목걸이를 계속 차고 다니고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명백한 증거도 없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냈습니다.”
그는 작심하고 남편의 눈을 바라보면서 “당신 동성애자인가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친한 친구일 뿐 동성연애는 아니다”며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싸움한들 일이 해결되랴 싶었다.
우울증이 왔지만 신앙의 힘으로 버텼다. 기도로 부르짖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욱’ 하는 감정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남편을 긍휼히 여기며 결혼생활을 이어 나갔다.
고민 끝에 남편의 연애 상대자를 만났다. 그 사람도 한 여자의 남편이자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기도했더니, 분노로 가득한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그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묻자,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차 전도사는 남편과의 동성애 관계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더 이상 부끄러운 아빠와 한 여자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남편이 되지 말고 참된 삶을 살아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일이고 죄송하다고만 했다.
그날부터 남편과 각방을 썼다. 오직 주님께 이 상황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기도해 주세요. 남편이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합니다”고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남편은 친아버지의 생사를 모르고 사랑이 부족한 가운데 새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 특히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길 원했고 가족 찾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울었어요. 고등학교 때 자취하면서 동성애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얼마 후 남편의 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시어머니에게 듣고 전하자 그제야 남편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나 동성애자 맞아. 나 이제 어떻게 하지”라고 되묻는 남편의 뺨을 때렸다. 쌓였던 화가 폭발한 것이다. “왜 지금까지 거짓말로 일관하고 이런 악몽 같은 일을 저질렀느냐”고 따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쏟아진 물,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자며 회복할 길을 찾자고 함께 기도했다.
건축 관련 일을 하는 남편은 교회 안수집사였다. 기도원도 다니고 성가대에서 지휘도 했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가 없었다. 말로만 하는 반복되는 후회와 회개로 동성애의 유혹에 계속 빠져들었던 것이다. 남편의 휴대전화는 비밀번호로 잠금이 걸려 있었다. 동성연애를 숨기기 위한 방편인 듯했다.
남편이 생을 마감한 2015년 4월 29일. 차 전도사는 야간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남편이 집에 없었다. 새벽 1시가 돼도 전화를 받지 않아 119에 신고해 위치를 추적한 결과 남편 사무실로 확인됐다. 비밀번호를 수소문해 잠긴 문을 열자 남편은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죽은 이유는 남겨놓은 물건을 통해 상세히 알게 됐다. 남편의 휴대전화에는 동성연애와 관련된 증거로 가득했다. 빌린 돈이 많았고 에이즈 치료약도 발견됐다. 동성연애 상대방과 살림을 차린 오피스텔 계약서도 있었다.
“남편은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결혼했고 돈과 음란, 거짓된 삶의 연속이었지요. 에이즈 걸린 것도 제게 숨겼고요. 남편이 한국교회의 탈동성애 사역을 미리 알았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안타까워요.”
그는 이런 경험을 계기로 신학을 공부해 새 삶을 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전도사로, ‘탈동성애 운동(ex-gay movement)’을 벌이고 있다.
탈동성애운동은 동성 간 관계를 시작하거나 추구하지 말라고 권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에는 과거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밝힌 사람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동성애를 벗어난 체험으로 동성애에 대한 성적 지향을 없애거나 억제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
차 전도사는 이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일만 생각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동성애를 벗어나려 노력하는 청년을 돌본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국내 최초의 ‘여장 남자’ 트랜스젠더 김유복(본명 김유복자)씨의 병상도 2년 가까이 지켰다. 고인은 이 땅의 동성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길 소망하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탈동성애 인권포럼과 세미나, 간증집회 등에 나가 동성애의 위험성을 증언한다.
“전에는 몰랐어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성애자들이 이렇게 많은 줄을…. 남편이 제 사랑의 눈을 뜨게 해주었어요. 남편으로 인해 동성애자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요.”
그는 남편과 옛 추억을 기억하며 “남편을 용서했다.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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