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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설교가 A. 토저 - 영적인 사람은 외롭다

배남준 2017. 1. 1. 16:35

             진짜는 행복보다 거룩을 열망한다/진짜인가?가짜인가?/A.W 토저      

                 

                   >내 자아를 버려라<, >임재체험< - A.W. 토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깊은 내면적 경험을 맛보았을 때, 그런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물론 일상적인 교회활동을 하면서 다른 경건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어느 정도 교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교제는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어차피 우리는 나그네요 순례자가 아닌가? 우리의 여행은 발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지 않은가? 우리 영혼의 동산에서 우리와 함께 걸을 수 있는 분이 하나님 한 분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우리는 단지 주의 집의 뜰을 밟기만 하는 수많은 무리와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이 다만 귀로 들은 것을 눈으로 본 사람들이 아닌가? 성소에서 나온 사가랴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환상을 본 것이 틀림없다"라고 수군거렸다(눅1:22). 사람들은 단지 어림짐작만 한 것을 그는 직접 체험했다. 우리도 사가랴와 같은 입장이 아닌가?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산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라고 가르치며 또 그것을 실천한다. 그는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주님이 사람들로부터 영광 받으시는것을 기뻐한다.그는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주님이 점점 커지시는 것을 기뻐한다. 그가 가장 주목하는 것을 화제로 삼는 사람이 너무 드물기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상투적인 이야기를 시끄럽게 늘어놓을 때 혼자 침묵을 지키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든다.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그가 멍청하다느니 너무 심각하다느니 하면서 그를 피하기 때문에 그는 점점 더 고립된다. 그는 상아궁전에서 나오는 몰약과 침향과 계피의 향기를 풍기는 친구를 찾지만, 그런 친구는 전혀 또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가슴 깊숙이 간직할 뿐이다.

이런 외로움 때문에 그는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된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그는 인간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깊은 교제를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그는 군중 속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을 내적 고독의 상태에서 배운다. 깊은 고독속에서 그는그리스도야말로 가장 소중한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으며, 그분이 우리 인생의 최고선이심을 배우게 된다.

신령한 고독을 오해하지 말라
이제까지 말한 것에 두 가지만 덧붙이겠다.
첫째, 내가 말하는 '외로운 신앙인'은 대중문학에서 냉소의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오만하고 금욕적인 사람이 아니다. 도리어 그는 자기가 가장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끼며, 자신의 고독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자기와 뜻이 맞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원하지만, 주변의 영적 분위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오직 하나님께 슬픈 마음을 토해내는 사람이다.
둘째, 내가 말하는 '외로운 신앙인'은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오직 하늘나라 만을 묵상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은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그는 상심한 자들, 타락한 자들 그리고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반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외롭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속세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들이 세상에 매우 잘 적응하여 편히 산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회에 편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들은 그들만의 순례자적 특징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세상의 잘못된 도덕적 구조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그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 구조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세상은 그들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 비극이다.

-A.W.토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