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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13 죽음은 내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 인도 배정희 선교사

배남준 2016. 12. 13. 12:27

[역경의 열매] 배정희 <13> 사랑하며 살다 기쁘게 죽음 맞으리라 기사의 사진

2005년 5월, 세계선교대회 참석차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어머니 박봉주 권사(왼쪽)와 함께한 배정희 선교사.



난 인도에서 무수한 죽음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했다. 죽음 장면을 볼 때마다 죽음으로 사명을 완수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죽음은 내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나도 죽음으로써 내 마지막 사명을 이룰 수 있을까.’ 인간은 결국 하나님 집으로 돌아가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거한다. 그 순간까지 주님 사랑에 힘입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리라 다짐해 본다.  

타고난 중보기도자로 자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신 어머니는 2012년 11월 24일 84세를 일기로 이 땅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자 둘째 동생 복희가 당신을 모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무렵 치매 증세까지 있었다. 인도에서 난 매일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고 매주 월요일 전화를 드렸다. 전화상으로 말씀을 잘하셨기에 어머니가 그리 심하게 치매를 앓는 줄 몰랐다.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조용기 목사님 초청 인도 대성회’가 열리기 7일전인 2012년 11월 20일,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 엄마가 지금 죽어가고 계셔. 빨리 한국으로 나와.” 대성회에 참석하려던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급히 한국으로 왔다. 한국으로 오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잘못하면 어머니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다. 11월 23일 한국에 도착해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봤다.


“엄마 저 왔어요.” 의식이 없었다. 난 세 마디를 했다. “엄마, 정말 사랑해요. 엄마, 정말 미안해요. 엄마, 정말 감사해요.” 난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들으셨다고 믿는다. 다음 날 어머니는 편안한 모습으로 천국에 가셨다.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나를 기다리며 죽음의 시간을 연기하셨던 것이다.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순간 동생처럼 지냈던 차진호 목사가 떠올랐다. 전화를 했다. “진호야. 엄마 장례식 좀 준비해줘.” “누나,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차 목사는 어머니의 천국행에 아들 노릇을 해 줬다. 차 목사를 비롯해 수많은 장로님과 권사님, 성도님들이 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그분들 덕택에 슬프지만 아름다운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식 치른 다음 날 곧바로 조 목사님의 하이데라바드 성회에 참석키 위해 인도로 떠났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확고한 천국 신앙을 간직하셨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신 것뿐이다. 천국으로 이사 가신 어머니는 지금도 세 딸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내겐 천국에 갈 아주 중요한 이유 하나가 더 생겼다. 사랑하며 살다 기쁘게 죽음을 맞으리라.

그 후로도 난 인도에서 수많은 죽음과 대면해야했다. 전기선을 만져 충격으로 죽고, 부엌에서 음식 만들다 옷에 불이 붙어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아이 낳다가 죽고, 병 걸려서 죽고, 홍수로 죽고, 지진이 나서 죽고, 길거리에서 자다가 죽고…. 그 대면의 순간마다 삶은 죽음과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싫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음도 있다. 슬프지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도 있다. 죽음을 통해 믿음은 단련된다. 나보다 먼저 죽은 자들은 한결같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단 하루도 무의미하게 살지 마십시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