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단기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나를 감쌌다. 집에 가서 내 결단을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권사님이신 어머니는 담대하셨다. “그래, 하나님이 불렀다면 가야지. 장하다, 내 딸.” 어머니는 부르심에는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면서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인생의 전환점은 그렇게 이뤄졌다. 1993년 12월 8일 교회로부터 인도선교사 파송장을 받고 인도로 가게 되었다. 월드미션 단기팀으로 처음 인도에 발을 디딘 이후 반년 만이었다. 인도 첸나이에 온 지 한 달 후, 조용기 목사님의 첸나이 성회가 열렸다. 인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던 내게 첸나이 성회는 커다란 자극제가 됐다. 성회가 끝난 후 첸나이를 떠나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한 달 동안 인도 전역을 배낭 하나만 메고 다니기로 했다. 선교 정탐 여행으로, 그 땅을 밟을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야기해 주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먼저 벵갈로에서 사역하는 L 선교사님을 만나러 갔다. 선배 선교사님 부부를 만나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마음에 적었다.
“배 선교사님, 하나님의 선교에는 실패란 단어가 없어요. 그러나 부름 받은 선교사는 실패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며칠을 L 선교사님 댁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성령께서 뭄바이로 갈 마음을 주셨다. 순종했다. 뭄바이 기차역에서 마중 나온 B 선교사님을 만났다. 인도 선교에 대한 그 분의 열정을 들을 수 있었다. B 선교사님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니어’의 무대로 뭄바이 최대 슬럼지대인 다라비(Dharavi)로 나를 인도했다. 뭄바이는 인구 1700만여명의 대도시로 교통 자체가 볼 거리였다. 철장이 쳐진 버스에 넘치도록 탄 사람들, 인도와 차도의 경계를 아예 무시하며 요리조리 운전하는 오토 릭샤의 행렬이 거대한 행위 예술판과 같았다.
이후 푸네를 거쳐 델리로 갔다. 델리에 도착해 먼저 여의도순복음교회 안수집사이신 정영재 델리주재 한국 공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정 공사님 부부의 강권으로 그 집에서 기거하게 됐다. 델리 역시 첸나이 못지않게 더웠다. 델리 거리를 걸으며 슬며시 들어오는 마음이 있었다. ‘델리로 와야겠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가운데 소원이 생겼다면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이다. 아마도 교회를 발견하기 힘든 델리에서 거룩한 욕심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정 공사님은 델리를 떠나는 날 아침식사 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교사님, 인도에 먼저 온 입장에서 세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첫째로 인도는 광야입니다. 광야에선 쳐다 볼 곳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둘째,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언어가 약하면 초등학생 수준의 사람들과만 소통이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언어를 잘 배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에서는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인도 사람들이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우리까지 법을 어겨선 안 됩니다.” 정 공사님의 세 가지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난 결국 북인도행을 결심했다. 그 곳이 하나님께서 지시한 바로 그 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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