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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명 발길 이끈 제주 올레길 옆 '순례자의 교회' - 2.4평 작은 교회

배남준 2016. 9. 13. 07:37

                  제주 순례자의 교회 김태헌 목사 "8㎡ 교회지만 영혼의 큰 쉼터죠"

                                - 담임 김태헌 목사-


삼다(三多)인 제주에 가면 삼무(三無)인 교회를 만날 수 있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올레 13코스에 있는 ‘순례자의교회’다. 넓이는 8㎡(2.4평). 정기적인 예배가 없고, 담임하는 목사가 없고, 출석하는 교인이 없다. 교회를 세운 김태헌 산방산이보이는교회 목사는 “예배, 목사, 교인이 없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항상 임재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삼무이지만 삼유(三有)인 교회인 셈이다.  

이미숙 사모와 함께 서울을 찾은 김 목사를 최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순례자의교회는 건물 한 채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방문자를 이끈 하나님이 그분들을 위해 직접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2011년 7월 완성된 이 교회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50여명. 그동안 다녀간 사람은 무려 7만명에 이른다.



             제주 겨울여행 1일차 - 순례자의 교회, 제주 순례자의 교회,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



방문객 세 명 중 한 명은 비그리스도인이다. “신앙이 없는 현직 교사 2명이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가졌고,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한참 통회의 눈물을 흘렸어요. 관광차 우연히 들른 곳에서 인생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거지요.”

이런 이들이 적지 않다. 사업 실패 후 자살을 결심하고 제주도에 왔다가 순례자의교회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삶의 소망을 얻기도 한다. 신앙생활에 회의를 품고 교회를 떠났다가 순례자의교회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다시 교회에 갈 결심을 한 이도 있다. 김 목사는 교회 방명록이나 인터넷에서 이런 고백을 자주 듣는다.  

이 작은 공간에서 이토록 많은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걸까. 김 목사는 아무도 없어서 오직 하나님만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2차례 정도 순례자의교회를 들러 방문객과 대화를 나눈다. “방문객 중에는 기독교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교회를 다녔던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있으면 용서를 구했어요. 그러면 대개 마음을 열더군요.” 순례자의교회가 소통과 화해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공간을 꿈꾸게 됐을까. 

1997년 외환위기 후 직장과 집을 잃고 그는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린 두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렸어요.” 김 목사는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 사모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도 하나님한테 매달리면 날 살려주시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있었어요.” 김 목사는 2000년 경북 경산 영남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이 사모는 노점에서 떡볶이를 팔며 뒷바라지를 했다. 


       제주 순례자의 교회



2002년 말부터 연고도 없는 제주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다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지 않습니까.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짓고 싶었습니다.” 교회를 지을 결심을 한 데는 한 권사의 헌신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순례자의교회를 지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쳐왔다. “지역 사회에서 정체불명의 교회를 짓는다는 비방과 힐난을 들어야 했고, 수사기관에 불려가 건축 관련 법을 위반했다고 조사를 받았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앓았어요.” 이 때문에 설립 초기 김 목사는 방문객들이 누리는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지금요? 지금은 정말 행복합니다. 순례자의교회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어려움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일이 하나씩 차근차근 풀렸고, 2013년 현재의 교회를 개척했다. 이듬해에는 미니채플세우기운동재단도 만들었다. 그는 밝은 얼굴로 “재단은 제2, 제3의 순례자의교회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동해안과 서해안, 내륙 깊숙한 곳에서도 순례자의교회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