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스포츠의 역사는 한국교회 선교역사와 시작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근대문화 도입을 도왔던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의 신화를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어학교 운동회로 확산된 스포츠 문화=선교사들에 의해 근대 스포츠의 개념이 도입되기 전 한국에서 스포츠는 무사들의 무술훈련이나 농한기 때 놀이로 존재하던 신체활동에 불과했다. 그러다 1891년 언더우드 학당에 체조가 정규 교육과정으로 개설된다.
근대 스포츠가 조선 땅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896년부터다. 영국의 허치슨 목사가 그해 5월 서울 삼선교 부근에서 화류회(花柳會)라는 영어학교 운동회를 개최했다. 다음해 영어학교의 두 번째 운동회가 훈련원에서 개최됐는데 이때 달리기, 공 던지기, 투포환, 멀리뛰기, 높이뛰기, 동아줄 끌기 등의 종목이 열렸다. 이때부터 매년 각급학교에서 운동회가 시작됐으며, 1907년에는 관·공·사립학교가 동시에 참여하는 대규모 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1906년엔 영어학교 졸업생 30여명이 축구 동호인들의 친목단체인 대한체육구락부를 설립했다.
스포츠 불모지였던 조선은 1906년부터 1910년까지 10개의 스포츠 단체가 결성될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이는 당시 정치·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는 “선교사들에 의해 전수된 스포츠는 실용주의적 교육을 지향했던 개화파에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표현행위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서양의 근대 체육과 스포츠는 개화파 및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개화기 한국사회의 근대화 방편으로 인식됐다”고 말했다. 이어 “개화기 때부터 정부차원에서 스포츠를 적극 지원했는데,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질레트 선교사, YMCA로 스포츠 발전에 기여=대한민국 스포츠 역사는 YMCA(기독교청년회)와 떼려야 뗄 수 없다. 1903년 발족한 YMCA는 지·덕·체의 교육목표를 세우고 그리스도 정신인 자유와 평등, 인애 정신을 함양하고 체육운동을 통해 그 정신과 목표를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YMCA의 체육이념은 이처럼 체육을 통해 기독교적 생활을 실천하는 데 있었다. YMCA는 야구 농구 배구 실내운동 등 각종 운동경기를 소개하면서 한국 스포츠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다. 그 중추적 역할을 한 사람이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다. 그는 1901년부터 1913년까지 12년 간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기독청년회의 조직 등 기초를 확립하고 야구, 스케이트, 농구 등을 소개했다.
질레트 선교사는 1904년 야구와 농구를 전수했다.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YM CA의 전신) 청년들에게 야구를 지도했는데, 1906년 이들과 독일어학교팀 간 시합을 벌일 정도로 숙달됐다. 1909년에는 동경유학생야구단과 외국인선교사야구팀이 시합을 했는데 유학생팀이 19대 9로 대승을 거둬 장안의 화제가 됐다. 같은 해 유도와 검도, 덤블링, 곤봉이 전수됐다. 1912년엔 한국 청년들로 야구단을 조직, 일본에 가서 원정경기를 했다. 1916년엔 권투가 전수됐다.
이상규 고신대 교수는 “서구사회에 통용되던 스포츠가 초기 선교사들과 YMCA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에 전수됐다”면서 “당시 사회체육의 하나였던 스포츠는 서구문명을 한국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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