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칼럼(하늘소망)

투신 자살 소동

배남준 2016. 7. 5. 13:46

  


'어느 치과의사의 과학속에 만난 하나님' 책 6장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지역장을 맡기 전 해 일이다. 나의 큰 아들 성문이는 대학 입시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성문이가 밤늦게 까지 집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밤 12시가넘어도 연락이 없었다. 그 애는 별로

밤늦게 귀가하는 때가 별로 없었고 만일 늦는다면 반드시 집에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이들과

부모와의 약속으로 정해져 있는 터였다.

밤 1시가 되어도 연락이 없었다. 그애는 신앙이 강하고 술, 담배도 하지를 않았다.
‘웬 일일까? 전화 한 통화는 할 수 있을 텐데…….’
밤 2시가 지나고 우리 부부는 처음 있는 일이라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은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오고 여러 가지 불행한 연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혹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버려진 건 아닐까?

그럼 깡패들에게 납치를 당한 건 아닐까? 거실에 시계 바늘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나는 더이상 참지를 못하고 여의도동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제 밤 여의도 부근에 인명 교통사고는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들이 아직 귀가하지를 않아서…….”
“자제 분이 학생입니까?”
“네.”
“자제 분의 인상착의를 말해주세요.”
경찰관의 사무적이고 피곤한 음성에 전화기를 놓으려다, 그래도 한 가닥 의지하는 마음으로 그 애의 나이와

그날의 복장차림을 대충 얘기해주었다.
“아, 지금 말씀하신 자제 분과 똑같이 스포츠형 머리에 남방과 청바지,흰 운동화, 나이 19세정도의

학생 한명 이 어제 여의도에서 자살을 한 사건이 발생 했습니다.”
경찰관의 음성은 이제 호기심을 띄고 또렷이 울려왔다.
“자살?”
우리 성문이 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얘기였다. 경찰관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63빌딩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학생의 소지품, 뭐 기억나는 것 없습니까?“
“…….”
나는 자살과 관련시켜 직업적으로 파고드는 경찰관의 질문이 불쾌해서 대답을 거부했다. 그러나 집요한 그의 설명은 부연되고 있었다. 그의 몇가지 소지품을 얘기하는 중에
“자살한 청년의 주머니에서 돈 8천원이 들어 있었습니다.”라는 대목에 나는 깜짝 놀랐다.
“8천원!”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끊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녁 때 일이 생각났다. 성문이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애가 더욱 공부에 몰두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모처럼 꾸지람을 하였다. 그리고 책값으로 2만원을 주었다.
풀 없이 나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이 아팠다. 아내에게서 그 애가 12,000원짜리 책을

샀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기억이 났다.


  수험생의 고민



불현듯 요즘 TV에서 공부의 스트레스나 주위에 가벼운 마음의 상처에도 쉽게 자기들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학생들에 대한 기사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시각은 새벽 3시 30분. 그 애는 웬일인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상착의가 비슷한 학생이 자살을 했고 그의 주머니에서 잔금 8천원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날 성문이가 쓰고 남은 돈의 액수가

똑같은 8천원이었다.
“8천원, 8천원! 아…….”
입 속에서 반복되던 가냘픈 음이 커다란 메아리로 귓전을 때리고 마침내 나는 터질 듯한 불안한 가슴을

 이기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문밖을 나섰다. 초조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던 아내에겐 ‘8천원’ 얘기는

차마 못하고 그냥 파출소를 다녀오겠다고만 했다. 파출소까지는 불과 몇 백 미터밖에 안됐지만 그날은 멀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8천원!”
그리고 TV에서 본 투신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이제는 뇌리 속에 크게 클로즈업 되어 오기 시작했다.
나는 깜깜한 어둠 속을 뚫고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뛰고 있었다.
군데군데 환한 불빛을 던져주고 있는 가로등 밑 보도 위를 달리며 하늘을 우러러보며 외쳤다.
“하나님! 도대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요!”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듯 싶었다.
‘나의 말 한마디가 그 애의 가슴에 그렇게 못을 박았던가!’
어제 저녁 풀죽어 나가던 그 애의 뒷모습이 다시금 나의 가슴을 아프게 저며 왔다.
‘정말 성문이가 자살했다면,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순간 나는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다.
‘오! 하나님 정말 자살만은 안돼요. 하나님께서 성문이를 젊은 나이에 부를 수는 있어요. 그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정말 자살만은 안 됩니다.하나님!’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끊는 목숨은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밖에 갈 수 없음을 뚜렷이 밝히고 있다.
‘하나님, 저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는 저희가 저 천국에서 그 애를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자살만큼은 안 됩니다. 그 학생이 성문이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 자살한 학생이 어쩌면 성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치달았지만,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생각은 전혀 일지를 않았다. 사람을 만드신 이도 하나님이요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다.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의 깊고 오묘한 뜻을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르고

살 때가 너무나 많다. 저 천국에서 성경 속의 말씀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간증자들의 얘기를 평소에 나는 굳게 믿고있다.
‘그저 자살만은 아니기를…….’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온 나를 파출소 순경은 매우

안됐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어제 63빌딩 위에서 투신한 학생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가 영등포본서에 비치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기를 원하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애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새벽 4시를 접어들고 있었다.
아내에게 영등포 본서로 확인을 가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이제 무엇인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끼고

전화기를 떨어뜨렸는지 그녀의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먼데서 들려왔다. 나를 태운 경찰백차가 밤거리를 무섭게 질주했다. 그때 인생에 처음 백차를 타보았다.
어느 친구는 술 먹고 백차를 타보았다는데, 더욱이 맨 정신으로 백차를 탄다는 것은 아무튼 괴로운 일이다.

경찰들은 생각 밖으로 정중하고 친절했다. 당직자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63빌딩 옥상 맨 꼭대기 위에 한 학생 모습의 청년이 서있었다.


    63빌딩 60층, "알아도 몰라도 멘붕을 부르는 사실"



거리 아래에서 위로 망원 특수 장비를 이용하여 촬영을 했나보다.
확실히 성문이의 얼굴 모습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영상이 멀었으나 인상착의와 모습은 아주 비슷했다.
나의 가슴은 거칠게 뛰고 있었다. 화면 속에 청년이 불안한 몸짓으로 옥상 맨 가장자리 좁은 통로를

서성이더니, 쪼그리고 앉아 고민하고 있었다. 거리 밑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청년이 일어나 투신 모습의 다이빙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성문아! 안 돼!”
‘저렇게 큰 고민이 우리 성문이에게 있었던가! 아버지는 너무 몰랐구나!’
드디어 가랑잎처럼 허공에 몸을 날린 그 청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자신도 주저앉으려던 다리를 한 손으로 책상 귀퉁이를 꽉 움켜진 채 간신히 버티고 서있었다.
‘성문일 리가 없다!’
이 모든 사실이 나에겐 꿈속에서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아저씨. 다시 한 번 틀어주세요.”
두 번째 상영 시에 나는 성문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몸짓에서 성문이와 뭔가 다른 그 청년의 모습이 엿보였다.
“댁에 아드님이 맞으십니까?” 형사가 물었다.
“아닌 것 같은데…… 확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시체가 한강성심병원에 있습니다. 가보시겠습니까?”
나는 시체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판별하고 싶었다.
“네, 가기 전에 집에 전화 한 통화 하겠습니다.”
경찰서 벽시계가 새벽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보, 성문이가 조금 전에 들어왔어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전도 이미지 - 가슴속에 품은 영혼 기도하며 전도하자

큰아이 성문이는 그날 밤 새벽까지 동네 아파트 공원에서 자기의 친구와 인생을 논하며 예수님을 전하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부근에 공중전화도 안보여 전화 거는 일도 무심히 잊었다고 했다. 이런 해프닝을 체험하고 나니 성경 속에서 마치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희생물로시험받았을 때처럼 나 자신도 하나님의 작은 시험을 통과한 것 같은 믿음의 기쁨이 충만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나 자신이 나의 자식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자식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자신감은, 하룻밤 자고나니 나의 신앙이 한 단계 훌쩍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