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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국에 복음전하려 '칼 안 든 강도'로 살았죠"

배남준 2016. 6. 24. 07:47



창립 60주년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

뉴욕 카네기홀서 음악회 개최… 500명의 어린이합창단 참여
"냉전 시대엔 선교 실감 못해… 90년대 中동포·탈북자 들어와 '방송 잘 들었다' 할 때 보람"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는 극동방송 회장 김장환 목사.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는 극동방송 회장 김장환 목사는“성과를 확신하기 힘들던 냉전 시대부터 공산권에 라디오를 통해 오직 복음만 전해왔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극동방송 주차장 입구엔 '오직 복음'이란 글자를 새긴 비석이 서있다. 지난 60년 동안 북한, 중국, 소련(러시아) 등 공산권 국가에 라디오를 통해 복음을 전해온 극동방송의 고집이다. 극동방송이 올 연말로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극동방송은 1956년 미국 선교단체가 설립했고 1977년부터 김장환(82·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 목사가 경영을 맡고 있다. 김 목사는 "보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24시간 복음만 전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했다.

극동방송은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11개 지사 500명의 어린이합창단이 미국으로 건너가 24일(현지 시각) 뉴욕 카네기홀에서 '나라사랑 평화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엔 6·25 참전 용사 132명을 비롯해 유엔 주재 각국 외교관과 미국의 대학 총장 등을 초청했다. 6·25전쟁 와중에 미군들의 허드렛일을 돕는 '하우스 보이'로 일하다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고 목사가 된 김장환 목사로서는 보은(報恩)의 자리이기도 하다. 행사를 위해 출국하기 전 김 목사를 극동방송에서 만났다.

―목회와 방송은 전혀 다른 분야인데 어떻게 방송에 발을 들여놓게 되셨나요.

"1959년 귀국해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목회 활동만 했어요. 그런데 1970년대 초 일본 극동방송 송신소가 오키나와에서 철수하게 되면서 이전 후보지로 제주도를 지목했어요. 저의 미국 대학 동창이 부탁해서 그 준비 작업을 돕다가 1973년 아세아방송이 설립되고 나니 '경영을 맡아달라'고 해서 엉겁결에 하게 됐죠. 그런데 목사님들께 출연을 부탁하니 다들 바쁘다고 사양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설교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또 1977년에는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이 합쳐지며 아예 생활을 극동방송에 맞췄어요."

―목회와 방송이 서로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보통 목사님들은 월요일엔 쉬는데 저는 방송사 회의를 월요일에 몰아서 했어요. 화요일엔 설교 준비하고 수요일부터는 모금하러 다녔습니다. 토요일엔 다시 설교 내용을 점검, 주일엔 설교했죠. 수원에서 서울 오가는 차 안에서 설교 준비와 모금 편지 내용을 녹음하면서 지냈습니다."

―냉전 시대에는 공산권 선교방송의 효과를 실감하기 어렵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중국 동포들과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극동방송 잘 들었다'고 할 때 '아, 헛수고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중국 동포와 탈북자 사이에서 극동방송을 통해 설교한 조용기, 곽선희, 하용조 목사님은 유명 인사입니다."

24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열리는‘나라사랑 평화음악회’포스터.
24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열리는‘나라사랑 평화음악회’포스터. /극동방송


―특별히 기억나는 청취자가 있습니까.

"1992년 어느 날 점심 약속에 맞춰 나가려는데 한 중국 교포 처녀가 찾아왔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허리에서 전대를 푸는데 100달러 지폐로 2만2100달러가 나와요. 약속을 취소하고 사연을 들었죠. 중국 지하교회 교인 30명이 22년간 모은 돈이었습니다. 자신들끼리 나중에 교회를 지을까 논의하다가 '극동방송이 우리 교회'라고 헌금하기로 했답니다. 외화를 반출하는 일이라 위험했는데 그 처녀가 자원했다더군요. 헌금을 잘 전달했다는 신호는 제가 방송에서 '할렐루야'를 세 번 외치는 것으로 정하고 왔다고 했습니다. '소원이 뭐냐' 물으니 '조용기·곽선희·하용조 목사님을 뵙고 싶다'고 해서 모두 인사시켜 줬고, 나중엔 제가 주례해서 결혼시켜서 지금도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어요."

―'고이는 만큼만 떠 먹는다'는 이른바 '옹달샘 경영'론도 유명합니다. 적자 없는 운영 비결은 뭔가요.

"저희 회사는 간부들도 법인카드가 없어요. 대신 회사 일에 쓴 돈은 모두 영수증 처리를 하지요(곁에서 비서가 '목사님도 항상 영수증에 사용 내역을 적어 주신다'고 거들었다). 아낄 수 있는 만큼 아껴 쓰고 열심히 모금하죠. 이번 미국 방문에도 여러 뜻있는 분들이 헌금해주셨어요. 항상 모금하러 다니니까 사실 '칼 안 든 강도'죠(웃음)."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 여러 차례 면회 가셨죠? 교도소 면회는 왜 자주 가시나요?

"선교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을 위로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는 겁니다. 유명 인사들만 알려져서 그렇지 저희 교회(수원중앙침례교회) 교인도 감옥에 가면 다 찾아다닙니다. 축구 공, 빵 사들고 전국의 교도소를 다 가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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