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국민일보 신춘문예 최우수 당선작) 양화진의 비문을 읽다 - 박혜료 거슬러 올라가면, 신분의 골격을 곧게 세운 벽이 가로막았다 오랜 인습의 내부에서 기와지붕과 붕당들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풀잎들의 구원은 흉년 안쪽에서 시들어 갔다 빗장을 걸어 잠근 긴 수염의 안개 열리지 않았다 고집 센 입 미간처럼 새벽의 문은, 그 문을 두드리며 바다 저 끝에서 이마의 주름살 같은 파도를 밀면서 들어오는 복음의 푸른 눈동자들 그들은 여명黎明을 끌고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벽별이 되어, 성문 밖에서 신분을 대물림하던 헐벗은 눈동자들을 보았다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는 아이들 짚 더미 속에 누워있는 여인은 뼈와 가죽만 남은 채 폐결핵을 앓으며 녹물 같은 핏덩이를 쏟아 냈다 바람이 나뭇잎 모아 허물어진 초가지붕 한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