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4월 13일 매일경제 신문에 "이어령씨 개신교에 귀의"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고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저의 고등학교 은사이셨고, 평생에 그분의 책과 강연을 통하여 제가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몇분중에 한분이십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크리스천이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반갑고 놀라운 사건이였습니다. 이 뉴스야말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박주영이가 골을 넣고 기도하는 장면만큼이나 신선하고 멋있는 화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1959년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어령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으로 부임하셨습니다.
약관 나이 26세,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였습니다.
우리 2학년 7반은 그의 첫 수업시간에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린 나이, 어쩌면 형님같은 청년을 우리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고, 사춘기 반항기 절정의 시기에 있었습니다.
으레 손 꼽히는 장난꾼들의 주도하에, 소리를 내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야단쳐도 우리는 아랑곳 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선생님이 강의를 포기하고, 겨울이었는데, 교단을 내려서 스팀가 창밖을 내다보시며, 노여운 자세로 등짐을 지고 그렇게 첫 시간이 끝났습니다. 우리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실력이 없는 선생님들은 학생들 등쌀에 결코 배겨날 수 없는, 그런 학교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늘 맥맥히 우리 마음 속 긍지로 흐르고 있던 학창 시절이었습니다.
월요일 조회시간, 김원규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불같은 노여움의 질책을 받았습니다.
김교장 선생님은 이제 세월이 흘러 반세기 가까이 우리나라 교육계에 전설적으로 회자되어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순수한 열정의 교육자가 아쉬운 시대에 우리는 안타깝게 살고 있습니다.
김교장 선생님은 전국을 훑어, 내로라는 선생님들을 스카웉해서 뽑아 올렸습니다.
지각생을 쫓다 넘어져 다리를 다쳐서, 평생을 지팡이를 집고 다니신 그 일화가 새삼 그리워 지는 순간입니다. 그런 극성으로 우리가 졸업할때 그 해에 서울대학을 550명(재수생 포함)이 입학을 했습니다 .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의 노여움에 머리를 숙인 우리 반은, 다음 국어 시간에 우선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실력을 평가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흥미를 가지고 다음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수업이 시작되자, 이어령 성생님의 현란한 말 솜씨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박학한 실력이 동서고금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선생님에게 참으로 미안스러워 했습니다.
그후 이 선생님 시간은 물론 항상 조용했습니다.
재미있었으니까.
대학시절, 젊은 선생님은 벌써 당대에 안병욱 교수와 쌍벽을 이루는, 대학가에 최고의 인기 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성의 오솔길, 흙속에 저 바람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등은 그의 유명한 저서입니다.
그분의 글은, 어느 날 호수 가에서 찬란하게 부서지던 햇살의 환희와 수면 위에서 번쩍이던 물고기의 편린처럼 빛나는 예지들이 숨어있기에, 숨을 죽이고 읽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잘 모르는 그분의 글들을 읽었으면하는 바람입니다.
30년전 쯤 일일까.
이어령 선생님의 빙부되시는 강 할아버지(이름은 잊었지만)를 우연히 치료를 해드렸습니다.
저의 치과에서 틀이를 하시고, 그 분은 저의 단골 환자가 되셨습니다.
강할아버지는 제가 이어령선생님의 제자임을 알고, 마치 자신의 제자인양 스스럼없이 대하여, 분위기를
친숙하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셨습니다. 물론 치료비도 잘 해드렸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70여세가 넘으셔도 기골이 장대하시고, 늘 사위 이어령 교수와 딸들의 성공을 자랑하셨는데, 밉지 않게- . 여러모로 박식하시고 인품이 훌륭하셨던 기억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종교를 문화의 일부로 인식해온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73)이 세례를 받고 개신교에 귀의할 뜻을 밝혔다" 어제 신문 기사는 이어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지식을 통해서는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다.
이제 그런 부분들을 영적인 차원에서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싶다"
이 교수님이 이런 마음을 고백한 배경에는 딸 민아 씨(47)가 겪었던 오랜 시련이 큰 작용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 성공하여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가 되어 청소년 마약문제롤 다루기도하고 변호사가 되었으나 92년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수술했으나, 96년과 99년 두 차례 암이 재발하였습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유치원에 들어간 아들이 특수 자폐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민아씨는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이 든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온누리 교회 새벽 시간에 그녀는 자신과 아들의 길고 길었던 투병기와 완치되기까지의 과정을 간증하여 온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와 감동의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전 장관은 신문 기사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딸의 고통 앞에서 아버지가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딸이 오랫동안 믿어온 하나님은 기쁨을 주고 상처를 치유해줬다. 딸이 믿는 대상에 대해 지성이 아닌 경배의 대상으로 다가가고 그런 믿음을 딸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때가 되면 평생 지성을 추구해온 지식인이 영성의 세계로 발을 옮긴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고 싶다"
이어령 선생남은 오는 7월, 온누리 교회 하영조 목사님으로 부터 세례를 받기로 예정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 복음 14 : 6)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속에서 신속히 영적인 체험을 하시고, 그 기쁜 간증의 책이 하루 빨리 출간되어,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리의 길잡이가 되기를 열심히 기도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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