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궁전 터
(출처-https://biblia.co.il/%ED%9E%88%EC%8A%A4%EA%B8%B0%EC%95%BC%EC%99%80-%EC%9D%B4%EC%82%AC%EC%95%BC%EC%9D%98-%EB%B4%89%EC%9D%B8/?fbclid=IwAR1AfqkdYOaFGV9liWHgKFeZYsy-mvNNxt7BZCBELsq2ZkK1-EmwIsBq3CQ)
히스기야 시대에는 두개의 왕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다윗의 시대에 다윗이 살던 궁이 있었구요. 또 다른 하나는 솔로몬이 오벨산에 만든 자기의 궁전입니다. 솔로몬의 궁은 그 이후로 유다의 왕들의 궁전이 되었지요. 유다 왕들의 궁전이라고 추정되는 오벨산의 곳곳은 이미 고고학자들이 참 많은 발굴들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2009년에 에일랏 마잘 (Eilat Mazar)은 발굴은 정말 놀랍습니다. 마잘이 발굴한 오벨산의 한 지역에서 대략 30개의 인장의 봉인들이 발견되었는데요. 이 가운데 하나가 히스기야 왕의 인장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이 인장 모양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적들을 물리친 후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는데, 병이 낫고 난 이후에 만들어진 인장으로 추정됩니다. 성경을 보면, 병든 히스기야에게 이사야가 찾아오지요. 그리고서는 삼일 만에 낫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징표로 하늘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습니다(왕하 20). 히스기야의 인장을 보면, 태양이신 하나님(시 84:11)을 방패 모양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고, 하나님의 깃(시 91:4; 겔 16:8; 말 4:2)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인장이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예언과 그 예언 후에 낫게 되었을 때, 낫게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새겼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겁니다. 히스기야의 인장이 찍힌 봉인은 왕궁의 부속 건물인 작은 망대 바로 옆의 발굴 구역에서 발굴되었는데, 같은 구역 안에서 또 다른 봉인이 발견되었습니다. 불과 3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발굴된 봉인에는 “예언자 이사야의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봉인의 경우는 “아하스의 아들 유다 왕 히스기야의 것”이라고 쓰여져 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구약 성경 열왕기하와 이사야에 나오는 히스기야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언자 이사야의 것”이라고 쓰여진 인장의 경우, 성경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자 이외에 동명이인의 예언자 이사야가 있을 수도 있으니, 꼭 히스기야 시대의 예언자이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예언자 이사야라고 단정짓지는 않겠습니다. 학자들은 단정짓는 것을 두려워하거든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것 처럼 히스기야와 이사야가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히스기야의 봉인이 발견된 그곳에서 발견된 예언자 이사야의 봉인은 성경에 나오는 그 이사야가 아닐까요? 마잘은 “매우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이사야 또는 이사야의 서기관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묶은 끈 위에 진흙을 올리고 예언자 이사야의 인장을 날인해서 봉인해요. 아직 그 봉인이 다 마르지 않은 때, 이사야의 손이 닿은 곳에는 이사야의 지문이 남겨져 있습니다. 이 편지는 히스기야에게 전달되었고, 그 편지를 읽은 히스기야는 편지들과 공문서들을 보관해 놓는 왕실의 부속 건물에 보관합니다. 머리 속으로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유다가 멸망한 후, 이 공문서와 편지들은 땅 속에서 잠을 자다가 결국 2,700여년이 지난 2009년에 햇빛을 보게된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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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인장을 보면, 태양이신 하나님(시 84:11)을 방패 모양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고, 하나님의 깃(시 91:4; 겔 16:8; 말 4:2)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인장이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예언과 그 예언 후에 낫게 되었을 때, 낫게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새겼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겁니다.
유다왕 히스기야의 시대는 구약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 중의 하나입니다. 남북 왕국 모두가 앗수르로부터 큰 위협을 받던 때가 히스기야의 시대입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될 때가 대략 727BCE 입니다(연대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음). 왕위에 오른 때부터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게 신하 국가로서 공물을 보냈습니다. 712년에 잠시 앗수르에 반대하는 편에 서기도 했었지만, 같은해 사르곤 2세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 시킨 후, 징벌적인 세금을 내는 것으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고, 착실하게 앗수르에게 세금을 바쳤습니다. 국제 정치의 눈으로보자면,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게 납작 엎드리면서 유다라는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히스기야가 앗수르에 기댄 형국이지만, 이 때 벌어놓은 시간으로 많은 것들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히스기야 때에 유다가 무너진 북왕국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예루살렘은 명실상부한 남북왕국의 정치 중심지가 되었고요. 예루살렘 성전은 남북왕국의 사람 모두에게 가장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건조하게 히스기야 시대의 역사를 간략하게 이야기 해드렸지만, 히스기야의 시대는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국제 정치의 역학 관계와 국내 정치의 복잡한 셈법,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신앙적인 갈등들은 현대 사회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도 풀어내기 힘든 숙제들이었습니다. 이 혼란의 때에 히스기야가 의지하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사야의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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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유다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시대에 활동하던 예언자였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의 주된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나게 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고, 그들이 걸어가는 길을 바른 곳으로 인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지금 옳게 생각하고 바르게 주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판단하고 주님께 여쭙기 위해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문가이기도 했지만, 당면한 국내외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가져야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하의 히스기야 부분에서, 그리고 성경 이사야의 곳곳에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곤란에 빠져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히스기야에게 그 정세 가운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인지를 전하는 예언자 이사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왕하 19-20; 사 37장)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은 여럿이 있습니다. 제일 일반적인 방법은 ‘외침’입니다. 길거리에서의 외침, 예언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왕이나 정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 써서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부득불 왕궁에 가지 못하는 경우 이런 방법을 선택하겠지요. 또는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서 글로 남겼을 지도 모릅니다. 편지를 보낼 때에는 편지의 내용을 누군가가 미리 보거나, 다른 편지로 바뀌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두루마리를 봉인을 합니다. 전달된 편지들은 왕궁의 서고에 보관되거나, 때로는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잘 보관한다고는 하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없어지겠지요. 그러나 그 두루마리를 봉인해 놓은 인장의 봉인은 진흙이기 때문에 말라서 그대로 남게 됩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이 땅을 파면서 발굴을 하다보면, 이 인장들이 종종 발굴되는데, 아마 거기에는 예전에 분명히 두루마리도 함께 있었을 거예요.
-배성수 블로그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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