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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대각성 부흥 운동이야기 - 이반 로버츠 목사

배남준 2018. 7. 15. 15:56

함께 먹는 기쁨_하용조 목사




                                                       웨일즈 부흥운동 이야기(예영수 목사)

***웨일스 대각성 부흥운동(Welsh Revival,1904)***


이반 로버츠를 만나주신 하나님

이반 로버츠(Evan Roberts)는 26세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소년시절 웨일스(Wales)의 로우골(Loughor)에서 자라났으며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웨일스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전 10-11년 동안 부흥운동을 위해 기도했다. 로버츠는 밤을  지새우면서 성경을 읽고 부흥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오랫동안 기독교의 실패에 대해 염려하면서 비탄에 빠져 기도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1904년 봄 어느 금요일 밤, 로버츠는 침대 옆에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1시경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시간과 공간이 없는 위대한 ‘거대함’으로 들리어져 갔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경이로움에 쌓여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4시간 동안 마치 친구와 대면하여 말을 나누듯이 하나님과 말을 나누었습니다. 5시경 나는 다시 지구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는 5시부터 9시까지 잠을 잤는데 또다시 9시부터 12시나 오후 1시까지 같은 체험을 했다. 그는 이 체험이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것 외에는 어떤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 3-4개월 동안 매일 아침 이런 대화가 계속됐다. 그 결과 로버츠의 성격이 변화되었으며,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는 하나님께서 웨일스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사 하실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나를 굴복 시키소서”


1904년 9월 22일(목) 바랜난널치에서 로버츠는 칼빈주의적 감리교 향상운동회의 W. W. 루이스(Lewis)와 세스. 조슈아(Seth Joshua)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새벽집회가 끝나고 아침 식사가 시작하기 전에 조슈아는 기도시간에 “주님 우리를 굴복시키소서.”라고 했다. 이 말은 특별히 로버츠에게 감동을 주었다. 성령께서 “바로 이것이 네가 필요한 것이야”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로버츠는 집회장을 나오면서 “오 주님 나를 굴복시키소서.”라고 기도했다.

아침 9시 집회가 시작하자, 로버츠는 “나를 굴복시키소서! 나를 굴복시키소서!”하고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로버츠를 굴복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로버츠가 굴복 당한 다음 평화의 물결이 그의 가슴에 넘쳐흘렀다. 그는 웨일스를 돌아다니면서 예수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고 있었다.


환상가운데 본 숫자 “100.000”


로버츠는 새벽 1시마다 깨어나서 4시간 동안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었다. 그 4시간 동안 그는 분명히 많은 환상을 체험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 환상 중의 하나는 달이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달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펼친 팔과 손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100,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환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부흥운동이 웨일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몇몇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웨일스에 부흥운동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말하고 사역 팀을 구성했다. 10월이 지나자 로버츠는 환상 가운데 자신이 고향 로우골에 있는 교회에서 특별히 젊은 사람들과 옛 동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환상을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써도 계속 그 환상이 나타났다. 마침내 10월 30(일) 저녁예배 때 주님은 그에게 고향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알았어요!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가겠어요.”라고 했더니 환상이 즉시 사라졌다. 그 순간 그는 찬란한 빛을 경험했다. “온 교회가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서 단 위에 계시는 목사님이 희미하게 보였어요. 목사님과 나 사이에 태양 빛과 같은 하늘나라의 영광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이후 갑자기 부흥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여 지칠 줄 모르게 지속됐다.


로우골 고향 교회에서의 집회


다음날 10월 31일 아침 로버츠는 고향 친구인 프로리 에반스(Florrie Evans)양에게 쪽지로 고향 로우골로 돌아가겠다는 것과 즉시 집회를 개최할 터이니 친구들의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는 고향의 모리아(Moriah) 교회로 돌아가 다니엘 존스(Daniel Jones) 목사에게 환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서 집회를 가졌다. 존스 목사는 “하도 땅이 단단해서 과업을 완수하기가 어려울 것이네.”라고 했다.

로버츠는 집회에 참석한 젊은 사람들에게 “성령님께 순종할 의사가 없는 사람은 떠나도 좋습니다.”라고 했는데 17명이 남았다. 3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면서 부흥을 방해하는 강박한 마음을 깨뜨려 달라고 기도했다. 로버츠와 17명 모두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로버츠의 동생과 세 자매도 그 가운데 있었다.

그 다음 날 저녁 집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집회는 3시간 동안 계속됐다. 그 집회의 특징은 회개, 기도, 간증이었다. 또 그 다음날 저녁 집회 때 로버츠는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해 설명하고, 이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부흥의 확산에 대한 계시라고 말했다.

11월 3일(목) 아침에 로버츠는 환상 가운데 촛불이 타오르고 그 배후에 태양이 영광 가운데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촛불은 현재의 부흥을 나타내며, 떠오르는 태양은 앞으로 올 대부흥의 역사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저녁 예배 때 로버츠는 마태복음 7:7의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 부흥운동이 성공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라고 말했다. 금요일 밤 집회에는 이때가지의 모든 집회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성공적이었다.

로버츠의 메시지는 4가지 점을 강조했다. (1)회개하지 않는 죄가 있다면,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것. (2)모든 의심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것. (3)성령께 즉시 순종해야 한다는 것. (4)그리스도를 공적으로 시인할 것 등이었다.


부흥운동의 폭발


토요일 밤 집회는 5시간 동안 계속 됐다. 젊은이들을 위한 집회라고 광고를 했으나 많은 부모들이 참석했다. 젊은 사람들의 변화에 놀랐다. 좌석은 모두 찼다. 로버츠는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에 집중하라고 했다. 성령 충만함이 느껴졌으며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일 밤 집회는 전환점이었다. 모두가 보다 강한 성령 임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두 여자가 성령 충만으로 자신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오 주님, 그만 채워 주세요! 죽을 것만 같습니다!”라고 외쳤으며, 다른 이들은 긍휼을 부르짖고, 울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했다. 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졌으며, 고뇌와 확신 가운데 땅바닥에 엎드려져 누워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역사가인 에이피온 에반스는 “전례 없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 부흥운동의 사건이 그 도시의 화제가 되었으며, 11월 7일(월)의 집회는 400여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교회를 채웠으며, 성령의 권능으로 예배는 새벽 3시까지 계속 되었다.


부흥운동의 확산


부흥운동은 로버츠의 집회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토마스 프랜시스(Thomas Francis)의 집회에서도 세스 죠수아(Seth Joshua)의 집회에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큰 역사가 일어났다. 같은 날 R. B. 존스(Jones) 목사는 북 웨일스에 있는 로스침례교회에서 연속으로 10번 집회를 가졌다. 집회 마지막 날 최고절정에 달했는데, 청중들의 환희, 찬양, 기도, 간증 등으로 집회는 12시간 계속되었다.

같은 날 로버츠는 회중교회에서 8시간 동안의 집회를 가졌는데 참석자 모두가 환희에 차 있었다. ‘서방 우편’(The Western Mail) 신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제 놀라운 종교적인 부흥이 로우골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회로 통하는 길은 사람들로 끝없이 줄지어 있다. 교회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상점들은 문을 일찍 닫았으며, 철강 공장 노동자들은 작업복을 입은 채로 교회에 왔으며, 멀리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라고 했다.

11월 10일(목), 로버츠는 성경을 들고 의자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말씀을 전했다. 한 젊은 여인이 일어서서 진지하게 찬송을 불렀다. 찬송이 계속 되는 동안 몇 사람들이 마치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의자에서 푹푹 쓰러져서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집회는 4시 25분에 끝났으나 사람들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11월 11일 밤 집회에서 사람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무릎을 꿇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쓰러져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기 위해 가련하게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시간 개념을 상실하고, 음식도 먹지 않고, 하로 일을 통한 육체적인 피곤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토요일에 로버츠의 집회는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으며, 새벽 5시에 끝났다. 로버츠는 여러 지방의 교회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신문은 그 사실들을 일일이 보도했다. 그는 그 지역의 종교 연합회에서도 초청을 받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도처에서 몰려 왔다. 호기심에 찬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은 벌써 로버츠를 ‘웨일스의 존 웨슬리’라고 불렀다.

그는 새벽 5시에 탄광 입구에 서서 교대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과 악수를 나누면서 너무나 피곤하지 않으면 집회에 오라고 격려했다. 그들은 대부분 집회에 참석했다. 그들은 외형적인 강인한 체구와는 달리 거의 신경질적으로 울면서 서툰 악센트로 간증을 했다.

웨일스부흥운동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감동적인 찬양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문가들 못지않게 은혜롭게 찬양을 잘 불렀다. 찬송을 부를 때 놀라운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감동을 받았다. 성가대도, 지휘자도, 오르간 반주도 없었는데도 자발적인 기름부음이 강한 영혼의 찬양이었다.

여러 무리들이 주야로 로버츠를 따라 다녔다. 수많은 편지들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영국, 노르웨이, 프랑스, 스페인, 아프리카 등지에서 날라 왔다. 로버츠는 부흥의 물결이 세계로 확산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유명한 신문 기자들, 종교 지도자들, 호기심에 찬 탐구가들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 부흥운동을 보기 위해 웨일스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웨일스부흥운동의 영향은 영국(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미국, 캐나다, 인도, 미얀마, 한국, 중국, 아프리카, 남미 등 수많은 나라에서 나타났다. 특히 한국에 끼친 웨일스부흥운동의 영향을 ‘1907년 한국 오순절'이라고 말한다.


부흥운동에서 본 인상들


가장 기억에 남을 일들이 남 웨일스에 있는 탄광 도시들에서 일어났다. 11월 말경에는 부흥의 물결이 그래몰간 탄광 지역을 파도처럼 휩쓸어갔다. 광부들 사이의 많은 기도회가 이루어지고 축복이 부어졌다. 광부들의 노동이 질적으로 개선되었다. 낭비벽이 줄어졌으며, 노동에 즐거움을 누렸으며, 술과 게으름과 도박이 줄어졌으며, 말을 부릴 때 욕설과 발길질이 줄어들었다.

부흥운동은 자발적으로 이어져 갔다. 로버츠가 분명히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들 중 하나였으나 조직하고 지배하는 일이 없었다. 인간적인 지휘부나 방향 제시도 없었다. 로버츠는 항상 “우리는 성령을 순종해야합니다”라고 했으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보다 가장 겸손했다. 마치 바람이 호수의 표면 위를 지나가듯이 성령의 권능의 영향력이 모인 무리들 위를 지나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로버츠는 가장이 없는 단순성, 소년 같은 순진성, 압도하는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또한 열성, 확신, 경쾌함을 보였다. 열린 성품으로 사람들과 악수하고 팔짱을 끼고 어깨동무를 하곤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모든 것이 자연발생적이었다. 로버츠는 12월 크리스마스 주일 저녁에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웨일스부흥운동에 관한 설교를 했다. 그 설교 전문이 인쇄되어 세계로 보내졌다. 로버츠는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서 말하는‘오순절의 계속’이기를 바랬다.

웨일스부흥운동에 관한 설교도, 명령도, 찬송가도, 성가대도, 오르간도, 헌금도, 광고도 없었다. 오르간이 있었으나, 소리가 없었다. 목사들이 있었으나 교인들 가운데 있었다. 목사들은 교인들과 함께 기뻐하고 예언하곤 했으나 설교는 없었다. 성가대가 필요 없었던 것은 모두가 다 성가대였기 때문이다. 청중들은 찬송가 없이 찬송을 계속 불렀다. 사람들은 일어서서 놀라움과 경의로 움으로 찬송을 함께 불렀다. 광고도 없었으나 모든 것이 바로 광고였다.

만일 우리가 웨일스부흥운동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었다면, 불이 일어나 여기저기로 그리고 그 넘어 바깥 세계로 번져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시는 것이었다. 오순절의 권능과 불길이 나타난 것이다.


웨일스부흥운동의 쇠퇴


1905년 1월 31일 회중교회 목사인 피터 프라이스(Peter Price)는 ‘서방우편’(The Western Mail) 신문의 칼럼에 맹독성 있는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그 결과 장기간의 열띤 공개 토론이 이어졌다. 로버츠는 일체 그 토론에 가담하지 않았다. 프라이스 목사에 의하면, 두 가지 부흥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하나는 참된 부흥이요 다른 것은 가짜부흥이라는 것이다. 자기 교회 것은 진짜이나, 로버츠의 운동은 가짜라는 것이다. 참 부흥운동에 대한 조롱과 신성모독 적인 익살은 부흥의 불길 위에 찬물을 끼어 얹기 시작하여 부흥운동이 소멸되기 시작했다.

1906년 4월에 제시 펜-루이스(Penn-Lewis) 부부는 로버츠를 자신들의 집에 초청하여 유하게 했다. 로버츠는 1930년 칼디프로 옮겼으며 1951년 세상을 떠났다. 로버츠는 펜-루이스 부부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이들 부부와 공저로 「성도들의 전쟁」(War on the Saints)을 출판했다. 그 책은 세계 부흥운동 동안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려는 악마의 세력에 대한 연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