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해 오신 선교를 그대로 본받으려면 저도 자꾸 실천해야죠. 머리로 기억하는 것은 쉽게 잊을 수 있지만 몸으로 익힌 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대요. 머리가 아닌 사랑으로 배워보려고요.’
지난달 설 명절을 앞두고 홀리네이션스선교회 대표 김상숙(69·일산 삼위교회) 권사가 200만원과 함께 받은 편지내용 중 일부다. 홀리네이션스선교회는 소외된 외국인들의 영·혼·육을 조건 없이 돕는 사역단체다. 정성스레 손편지를 쓴 주인공은 김 권사의 ‘복음으로 낳은’ 아들 고요한(가명·39)씨다. 2015년 광주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0만원의 헌금을 어머니에게 보내 “꼭 필요한 곳에 써 달라”고 했다.
김 권사는 “혈액암을 앓고 있는 동갑내기 형제의 수술비 전액을 지원했다”며 “요한이는 담 안에서, 형제는 담 밖에서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친구 사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김 권사는 선교회원들과 함께 새벽 6시부터 길을 나섰다. 김 권사에겐 요한 외에 아들이 한 명 더 있다. 청주교도소에 있는 임디모데(가명·48)씨다. “요한이를 소개해준 아들이죠. 반듯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글솜씨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교도소에서 검정고시로 중·고등 과정을 마쳤고, 국어국문학 학사 고시반을 통해 독학 학위도 취득했어요. 디모데는 천재예요.”
아들을 알게 된 건 2011년 가을쯤. 당시 광주교도소에 있던 디모데는 우연히 휴지통에 버려진 신문에서 김 권사 기사를 읽었다. 책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를 출간하고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책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쓴 게 계기가 돼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한번은 편지에 저를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겠냐고 썼더라고요. 얼굴도 모르는데 무슨 어머니고 아들입니까. 그래서 면회를 갔죠. 얼굴 보고 디모데란 새 이름을 선물하고 아들 삼았죠.”
디모데는 어릴 적 계모의 손에 이끌려 서울대공원에 버려졌다. 인천의 유흥가를 전전하다 순간의 실수로 무기수가 됐다. 교도소에서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요시찰 인물이었다. 몸이 묶인 채 독방 벽에 기대 흐느끼던 어느 날, 교도소 예배 때 불렀던 찬송가 ‘어서 돌아오오’가 들리는 듯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회개기도를 드렸다. 그날 이후 180도 달라졌다.
김 권사는 디모데로부터 받은 첫 편지를 지금도 기억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나는 사회에 암적인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허접쓰레기로 취급했죠.’
“그런데 그 허접쓰레기도 명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아세요? 사랑으로 가능해요. 일주일에 두세 번 손편지를 정성껏 써서 두 아들에게 보내요. 사랑만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기에 편지 쓰는 걸 중요한 일과로 여깁니다. 지금은 청주교도소지만 그 전엔 디모데를 만나러 순천·장흥교도소로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면회를 갔습니다.”
오전 9시 청주교도소 접견실. 짧은 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디모데는 온화해 보였다. 방음유리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 이모, 형으로 부르는 정송자 사모, 최병민 집사, 김정우 목사와 마주 앉았다. 15분 불이 켜지자 김 권사는 감기로 고생하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짧게 찬양도 불렀다. 디모데는 지금도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다고 했다. 하루에 신구약 12장을 꼭 읽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순종해 지금까지 성경 20독을 했으며 성경암송도 꾸준히 하고 있다.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같은 방에 있는 7명 형제들에게 카드와 등기우표를 나눠줬어요. 잇몸에 염증이 생겨 부어오르는 한 무기수 형제에겐 약도 사줬습니다. 그 형제가 ‘비싼 핫팩도 사주고, 집이 잘살아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네, 부자입니다. 하나님이 부자 아버지시거든요’라고 말했어요.” 디모데의 말에 한바탕 웃었다.
15분이 지나자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김 권사는 “늘 시간이 아쉽다고 생각한다”며 아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광주교도소로 향했다.
“요한이는 디모데를 통해 복음을 들었어요. 형처럼 의지하고 지냈는데, 디모데가 이감되자 요한이가 다시 전처럼 외로워하고 신앙의 정체성도 흔들린 거죠. 동생이 힘들어하니 디모데가 제게 요한이를 부탁한 겁니다. 그렇게 둘째 아들로 삼았어요.”
요한의 가정은 불행했다. 그의 나이 15세 때 어머니는 가출했고 모든 것을 포기한 아버지는 자식을 돌보지 않았다. 가정폭력에 밥을 굶는 것도 예사였다.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건 냉대뿐이었다. 삐뚤어진 그의 삶은 온갖 불법과 죄악으로 물들었고 결국 무기수가 되고 말았다.
광주교도소 본관 2층에 있는 소예배실에서 오후 2시 요한을 만났다. 약간은 경직된 모습, 어머니가 반갑게 포옹하자 이내 활짝 웃었다. 자매결연 프로그램 일환으로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렸다. 교도관의 감독 아래 과일 빵 떡을 나누며 말씀을 보고 찬양을 불렀다.
시편 23편 말씀을 읽은 아들에게 김 권사가 말했다. “요한아, 우리는 ‘우리 목자’라는 표현 대신 ‘나의 목자’라는 표현을 묵상해야 해. 일대일의 깊은 개인적인 관계라는 것이지. 그 목자로 인해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은 어린양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어. 이런 하늘 평강을 누리면서 항상 마음을 잘 지키기를 기도하자.”
찬양을 좋아하는 요한은 교도소에서 성가대로 활동한다. 종일 목공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 역시 기도와 말씀, 신앙서적을 읽는 데 힘쓰고 있다. ‘주님, 오늘도 부탁해요’를 비롯해 지금까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50권의 책을 두 번씩 다 읽었다. 2년째 보내고 있는 200만원은 목공을 하고 받은 월급으로 모은 것이다.
“두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고 나서부턴 돈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수용자들을 돕는 데 모두 사용합니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들 하는데, 그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학위 취득을 위해 서류를 떼다가 자신이 무기수에서 20년으로 감형된 사실을 알았다. 11년 후면 출소한다. 신학을 공부해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 감별소에서 청소년,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목표다. 요한은 김 권사에게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사랑도우미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이 써 내려갈 ‘은혜로운 감방생활’ 이야기가 계속 기다려질 것 같다.
청주·광주=글·사진 노희경 기자
지난달 설 명절을 앞두고 홀리네이션스선교회 대표 김상숙(69·일산 삼위교회) 권사가 200만원과 함께 받은 편지내용 중 일부다. 홀리네이션스선교회는 소외된 외국인들의 영·혼·육을 조건 없이 돕는 사역단체다. 정성스레 손편지를 쓴 주인공은 김 권사의 ‘복음으로 낳은’ 아들 고요한(가명·39)씨다. 2015년 광주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0만원의 헌금을 어머니에게 보내 “꼭 필요한 곳에 써 달라”고 했다.
김 권사는 “혈액암을 앓고 있는 동갑내기 형제의 수술비 전액을 지원했다”며 “요한이는 담 안에서, 형제는 담 밖에서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친구 사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김 권사는 선교회원들과 함께 새벽 6시부터 길을 나섰다. 김 권사에겐 요한 외에 아들이 한 명 더 있다. 청주교도소에 있는 임디모데(가명·48)씨다. “요한이를 소개해준 아들이죠. 반듯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글솜씨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교도소에서 검정고시로 중·고등 과정을 마쳤고, 국어국문학 학사 고시반을 통해 독학 학위도 취득했어요. 디모데는 천재예요.”
아들을 알게 된 건 2011년 가을쯤. 당시 광주교도소에 있던 디모데는 우연히 휴지통에 버려진 신문에서 김 권사 기사를 읽었다. 책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를 출간하고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책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쓴 게 계기가 돼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한번은 편지에 저를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겠냐고 썼더라고요. 얼굴도 모르는데 무슨 어머니고 아들입니까. 그래서 면회를 갔죠. 얼굴 보고 디모데란 새 이름을 선물하고 아들 삼았죠.”
디모데는 어릴 적 계모의 손에 이끌려 서울대공원에 버려졌다. 인천의 유흥가를 전전하다 순간의 실수로 무기수가 됐다. 교도소에서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요시찰 인물이었다. 몸이 묶인 채 독방 벽에 기대 흐느끼던 어느 날, 교도소 예배 때 불렀던 찬송가 ‘어서 돌아오오’가 들리는 듯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회개기도를 드렸다. 그날 이후 180도 달라졌다.
김 권사는 디모데로부터 받은 첫 편지를 지금도 기억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나는 사회에 암적인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허접쓰레기로 취급했죠.’
“그런데 그 허접쓰레기도 명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아세요? 사랑으로 가능해요. 일주일에 두세 번 손편지를 정성껏 써서 두 아들에게 보내요. 사랑만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기에 편지 쓰는 걸 중요한 일과로 여깁니다. 지금은 청주교도소지만 그 전엔 디모데를 만나러 순천·장흥교도소로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면회를 갔습니다.”
오전 9시 청주교도소 접견실. 짧은 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디모데는 온화해 보였다. 방음유리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 이모, 형으로 부르는 정송자 사모, 최병민 집사, 김정우 목사와 마주 앉았다. 15분 불이 켜지자 김 권사는 감기로 고생하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짧게 찬양도 불렀다. 디모데는 지금도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다고 했다. 하루에 신구약 12장을 꼭 읽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순종해 지금까지 성경 20독을 했으며 성경암송도 꾸준히 하고 있다.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같은 방에 있는 7명 형제들에게 카드와 등기우표를 나눠줬어요. 잇몸에 염증이 생겨 부어오르는 한 무기수 형제에겐 약도 사줬습니다. 그 형제가 ‘비싼 핫팩도 사주고, 집이 잘살아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네, 부자입니다. 하나님이 부자 아버지시거든요’라고 말했어요.” 디모데의 말에 한바탕 웃었다.
15분이 지나자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김 권사는 “늘 시간이 아쉽다고 생각한다”며 아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광주교도소로 향했다.
“요한이는 디모데를 통해 복음을 들었어요. 형처럼 의지하고 지냈는데, 디모데가 이감되자 요한이가 다시 전처럼 외로워하고 신앙의 정체성도 흔들린 거죠. 동생이 힘들어하니 디모데가 제게 요한이를 부탁한 겁니다. 그렇게 둘째 아들로 삼았어요.”
요한의 가정은 불행했다. 그의 나이 15세 때 어머니는 가출했고 모든 것을 포기한 아버지는 자식을 돌보지 않았다. 가정폭력에 밥을 굶는 것도 예사였다.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건 냉대뿐이었다. 삐뚤어진 그의 삶은 온갖 불법과 죄악으로 물들었고 결국 무기수가 되고 말았다.
광주교도소 본관 2층에 있는 소예배실에서 오후 2시 요한을 만났다. 약간은 경직된 모습, 어머니가 반갑게 포옹하자 이내 활짝 웃었다. 자매결연 프로그램 일환으로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렸다. 교도관의 감독 아래 과일 빵 떡을 나누며 말씀을 보고 찬양을 불렀다.
시편 23편 말씀을 읽은 아들에게 김 권사가 말했다. “요한아, 우리는 ‘우리 목자’라는 표현 대신 ‘나의 목자’라는 표현을 묵상해야 해. 일대일의 깊은 개인적인 관계라는 것이지. 그 목자로 인해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은 어린양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어. 이런 하늘 평강을 누리면서 항상 마음을 잘 지키기를 기도하자.”
찬양을 좋아하는 요한은 교도소에서 성가대로 활동한다. 종일 목공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 역시 기도와 말씀, 신앙서적을 읽는 데 힘쓰고 있다. ‘주님, 오늘도 부탁해요’를 비롯해 지금까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50권의 책을 두 번씩 다 읽었다. 2년째 보내고 있는 200만원은 목공을 하고 받은 월급으로 모은 것이다.
“두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고 나서부턴 돈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수용자들을 돕는 데 모두 사용합니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들 하는데, 그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학위 취득을 위해 서류를 떼다가 자신이 무기수에서 20년으로 감형된 사실을 알았다. 11년 후면 출소한다. 신학을 공부해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 감별소에서 청소년,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목표다. 요한은 김 권사에게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사랑도우미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이 써 내려갈 ‘은혜로운 감방생활’ 이야기가 계속 기다려질 것 같다.
청주·광주=글·사진 노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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