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칼럼(하늘소망)

왜? 예수님은 목수이셨을까?

배남준 2018. 1. 28. 15:59

16. - 나자렛의 이웃이었던 부자 레위 / 훌륭한 목수였던 예수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5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 나사렛에 돌아와 회당에서 가르칠 때에 말씀을 듣던 유대 고향인들이 그 지혜와 권능에 놀라며 보인 반응이 마가복음 61-3절까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그의 직업이 목수였다.(13:55) 그런데 그 아들 예수님도 아버지를 도와서 그 직업을 이어받아 목수의 업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예수님은 왜? 그 많은 직업 중에 하필 목수이셨을까?

성경을 읽으며 누구나 한번쯤 가져 볼 수 있는 의문이기도 하다.


1. 겸손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머리 속에 얼른 떠오르는 판단은, 그분의 낮은 신분으로 인한 겸손의 본을 보이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는 생각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저 높은 하늘 보좌에서 이 낮은 세상의 비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셨다.

출생부터가 세상에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22:29)

목수라는 직업은 옛날에 존귀하고 높거나 부유한 직업은 결코 아니었다. 비천하고 낮고 가난한 직업이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단숨에 세상 만물을 가장 권위 있게 만드셨던데 비해 예수님은 나사렛이란 조그만 동네에 숨어 초라한 움막 속에서 동네 사람들이 꼭 필요한 물건들을 묵묵히 만들고 계셨다. 가장 화려하고 소중해야할 젊은 청춘을, 다가올 공생애의 사역을 위해 그렇게 소리 없이 그저 순종의 세월을 보내며 겸손하게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2. 창조

오래전  '목수 아버지'라는 책을 읽으며 큰 은혜를 받았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변호사 케니 켐프가 쓴 이책은 아마추어 작가들을 위한 세계최대의 잡지인 라이터즈 다이제스트로부터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하여 예수님이 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목수로 일하셨는지 그 이유중의 하나를 깨우칠 수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창조 사역이었다.

 

케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서서히 아버지의 위대한 점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때 늦은 후회를, 회고담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답게 풀어놓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작업실로 썼던 낡은 차고는 집안의 행복과 추억이 만들어지는 보물창고였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자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그 차고에서 직접 손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만들어 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사랑과 인생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가 다듬던 합판은 단순한 목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행상자였고, 침대였고, 장난감 기차의 역 플랫홈이었으며, 케니의 꿈과 비밀이 들어있는 서랍이었다. 청년시절 저항아로 한때 아버지의 속을 썩이던 그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돌아와서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30여 년 동안 닳고닳아 반질반질해진 도구들을 바라보며 낡은 합판들이 아버지의 손에서 마치 마술처럼 아름답고 놀라운 작품으로 변했던 감동을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숨죽여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이제 됐다"고 말하며 땀을 닦는 아버지의 모습은

()과 같았다.

그렇다. 아버지는 위대한 목수였던 것이다. 무엇이든 만들고 생명을 부여하고 가족의 꿈을 이어주던 목수였던 것이다.

케니는 책 끝머리에서 아버지가 남긴 교훈을 떠올린다.

"목수가 되어라. 그리하여 스스로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가장 낮은 자의 신분으로 창조자 하나님의 아들임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직업 중에 목수보다 더 멋있는 직업이 어디 있으랴! .

 

3. 처소를 예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거할 곳'을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KING JAMES VERSION에서는 mansions, N.I.V에서는 rooms라고 기록되어 있다. 거할 곳은 저택이나 방들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은 아름다운 방들을 가진 저택인 것이다. 켤코 시시한 집이 아니다. 처소는 똑 같이 'a place'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엄연히 하늘 나라에 존재하는 공간적인 물리적  장소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의 몸이 거할 곳은 하늘나라 아버지 집에 많이 있다. 처소가 준비되어 있는가? 물론 예수님의 재림은 무척 가까이 와 있지만 아직은 오시지 않고 계신다.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는 것이다.

완료가 아니고 아직 진행중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할 저택 공사가 모두 끝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이다.

집을 짓는 공사는 목수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만세 전에 이미 하늘나라에 계셨던 창조의 사역자 이시. 그리고 지상에 오셔서

목수로서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만드시고 집을 지으셨다. 사람들과 같이 계시므로 그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겪으셨고 인간의 육적인 본성도 그대로 느끼셨다. 그래서 그분이 짓는 집은 우리를 위한 더욱 아름다운 집이 지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4. 가난속에 풍요

-겨우 여섯 살쯤 되었을 때 나는 짚더미 위에 누운 어린 예수를 보고서 이렇게 소리쳤다. "왜 재는 짚더미 위에 누워 있어? 내 동생 쥘로에게는 예쁜 침대가 있는데. 불공평해!"

그러자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저 아이는 이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기도 가난하길 원한 거야." 이 말은 내게 어떤 신비한 울림을 주었다.-

엠마뉘엘 수녀가 쓴 '풍요로운 가난'이란 책 속에서 나오는 말이다.

'카이로의 넝마주이'로 불리는 그녀(94)는 프랑스의 20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흠모를 받으며 현재 그녀의 뜻을 지지하는 회원들 6만 명과 함께 전세계 어려운 아동들을 돕고있고 프랑스의 불행한 노숙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스무 살의 나이에 그녀는 불행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수녀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후 이집트, 터키, 니지 등지에서 수녀 교사로 일하다 62세에 은퇴한 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하고 카이로의 빈민가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학교와 집과 보건소를 세우는 일을 하며 23년간 넝마주이들 과 함께 생활을 한다.

빈민들의 얼굴에서는 오히려 온화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빛에는 지혜가 깃들여 있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 무엇에도 소유 당하지 않는 인간의 지혜가 깃들여 있다. 쓰레기 양탄자 위에 앉아 그들은 놀라운 부를 향유하고 있으며, 사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땅도 마음도 울타리로 가두지 않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5:3)

밤이 되면 곧잘 엠마뉘엘 수녀는 더러운 돼지 사육장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그곳 오물 투성이 속에서 불현듯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하며, 그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이 주는 풍요의 행복한 진리를 최하층 빈민들의 삶 속에서 깨달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목수로서의 가난한 삶은 바로 우리들을 풍요하게 하기 위한 모습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