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사모(앞줄 가운데)가 계성여중 국어교사 시절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수도자보다 목회자로 부름 받으신 분 같아요”
김연수 시인 수녀를 향한 내 사랑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기 위해서는 항상 수녀로만 대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녀가 선택한 수도의 삶을 존중하고 나 역시 한 사람의 수도사로 살아야겠다고 결단했다.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한 영혼을 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해야지. 성 프란치스코가 글라라를 그리워하면서도 주 안에서 아름답고 고결한 사랑으로 승화시켰듯 나도 그래야지.”
이른 아침이면 물 한모금 마시고 명동의 S.P 수녀원으로 오기까지 이 말만을 되풀이하며 걷고 걸었다. 그날 베델성서 연구반에 들어오기까지 자초지종을 그녀에게 다 털어놓았다. 그리고 나 역시 결혼을 포기하고 수도자가 되라는 부르심에 이제는 응답하고 싶다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 말을 다 듣고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최 전도사님은 수도자보다는 목회자로 부름 받으신 분 같아 보여요. 정말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 때문이라면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삶이 수사 신부뿐이겠습니까.”
그 시절 만난 가톨릭 관계자들에게 좀처럼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대개는 하루 빨리 개종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어디 있느냐’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주님께 물어보라고 조언을 했다. 그녀는 내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라고 했다
유럽의 재속 수도회와 기독교 공동체에 관련된 자료와 책자도 소개해줬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1년에 단 한번 만이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해 준다면 평생 수사신부의 길을 가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남몰래 싹튼 사랑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계성여중 국어교사이면서 종교부 학생들의 여름수련회 책임자였는데, 난 학생들 레크리에이션 담당자로 그녀와 함께 충북 미원천주교회로 동행한 일이 있다. 수련회를 마칠 즈음 내 심신은 매우 지쳐있었다. 그녀는 내게 어디라도 가서 휴양하며 쉬고 올 것을 부탁했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다가 마침 대화 중 알게 된 그녀의 고향집이 떠올라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부탁했다.
도착하니 김 수녀의 어머니와 중학생 조카 등이 날 맞아줬다. 김 수녀가 태어난 집에 그녀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어머님으로부터 그녀가 수녀가 되기까지 이야기를 눈물겹게 듣기도 했다. 특별한 휴가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서 일상 속에 파묻혔다.
어느 날 성 바오로 서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오랜만에 A수녀를 만났다. 안부를 주고 받다가 여름휴가로 김 수녀의 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무심코 꺼냈다. 대화중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고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걸었기에 먼저 전화가 걸려온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말투가 평소와 달랐다. 약속을 잡고 만났을 때 그녀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했다. 교장 수녀가 그녀를 불러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았다. 수녀가 친정집에 남자를 가라고 해도 되느냐”며 책망하며 걱정을 했다고 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짐작은 갔다. 그녀는 다시는 자신을 찾지도, 전화하지도 말라고 애원했다.
그날 이후 수녀원 방문은 말할 것도 없고 전화나 편지, 엽서도 전달되는 일이 없었다. S. P 수녀원 근처를 서성대다 어쩌다 마주쳐도 그녀는 나를 아예 못 본 척하고 지나쳤다. 친하게 지냈던 신부나 수녀들도 나를 경계하듯 서먹하게 대했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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