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77) 할아버지의 삶은 내내 가난했다.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지만 빚은 늘어만 갔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술로 날을 지새웠다. 집세를 내지 못해 쪽방에서도 쫓겨났고 청량리역 인근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나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식사도 대접해줬죠. 내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어요.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찾고 일용직이지만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종순(76) 할머니는 다음 주면 생애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유권자로 참여한다. 그 동안은 주민등록번호가 없었다. 부모가 호적 등록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청소년 시기에 전남 목포에서 상경한 후 줄곧 떠돌이 노숙인으로 살았다. 소일거리로 파지를 수집하거나 동네 마실 나가는 게 전부였다. 그런 할머니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가족관계등록 성본창설신청을 통해 70여년 만에 주민번호를 찾아 준 이들이 있다. 이 할머니는 도움을 준 이들에게 진심을 담은 한마디를 건넸다. “사랑합니다.”
의지할 곳 없던 이들 두 사람에게 손을 내민 곳은 다일공동체다. 1988년 11월 최일도 목사가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굶주려 쓰러진 노인에게 라면을 끓여 대접한 것을 계기로 시작한 ‘밥퍼 나눔운동’이 올해로 29년째를 맞았다. 머물 곳도, 돌봐줄 가족도 없이 한 끼의 식사가 절실한 이들에게 최 목사와 다일공동체가 건넨 밥 한 공기는 어느새 1000만 그릇을 넘어섰다.
다일공동체는 이를 기념해 2일 서울 동대문구 황물로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오병이어의 날’ 행사를 열었다. 본부 앞 공터에 마련된 의자 1000석은 축하하러 온 인파로 가득 찼다. 대부분 이곳에서 매일 밥을 먹던 노숙인과 독거노인들이었다. 이차술(61)씨는 29년 전 밥퍼 나눔운동 초창기에 최 목사와 만났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이씨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수감생활을 했고 생활고를 못이긴 어머니는 가출을 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열두 살 때 농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성인이 돼서도 술에 찌들어 살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세상이 나를 버렸고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최 목사님을 만나고 밥을 얻어먹으며 따뜻한 위로를 받았어요.” 이씨는 17년간 다일공동체를 찾았고 삶도 점차 변했다. 작은 노점을 시작하며 노숙 생활을 접었다. 그는 매일 아침 다일공동체를 찾아 청소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최 목사는 “가난한 이웃을 품고, 그들의 ‘밥’이 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다일공동체는 국내외에서 복음과 밥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총장, 배우 김보성씨 등 등 각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행사 마지막에는 지름 2m의 대형 솥에 쌀밥과 갖가지 나물, 호두와 잣 등을 넣어 1000인분의 비빔밥을 만드는 시간도 가졌다. 참석자들은 최 목사의 선창에 따라 “밥이 답이다. 밥이 평화다. 밥부터 나누세”라고 외친 뒤 식사를 나눴다.
다일공동체는 현재 미국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탄자니아 우간다 등 10개 국가에 17개 분원을 열어 빈민구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와 함께 어려운 이웃의 생애 전반에 걸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스톱 종합복지시설’ 건립도 추진한다.
글·사진=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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