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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퍼올린 영감의 詩

배남준 2017. 4. 29. 10:33

언어와 영감의 ‘수원지’ 성경에서 퍼올린 믿음의 詩 기사의 사진



성경은 서사가 마르지 않는 거대한 수원지(水源地)다. 특히 창세기는 압축된 시간이 담겨있다. 자기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온 12명의 중견 시인들이 ‘12시인의 처음 노래 창세기’(창조문예)를 출간했다. 구약성서 창세기를 주제로 신앙을 고백한 시들을 모아 펴낸 것이다.  

권택명 김석 김신영 김지원 박남희 손진은 양왕용 이향아 정재영 조정 주원규 하현식 시인이 믿음 안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신앙시의 지평을 넓힌다는 소명으로 참여했다. 

하나님의 섭리를 감지한 60편의 시를 읽다보면 창세기를 바라보는 12시인의 시선이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소명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재영 시인은 “창세기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의 고백서”, 조정 시인은 “이야기를 ‘유일한 씨앗’으로 품은 책”이라고 시작노트에서 밝혔다.  


시인들은 창세기를 몇 번씩 통독하며 창작에 임했다. 권택명 시인은 “이 지상의 삶에서 진정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기경하고 파종하는 마음으로 시작에 임했다”고 밝혔다. “벽력 같은 그 말씀을 정수리에 맞은 이후/내 지상의 생애 날마다/겨자씨만한 소망의 씨앗 하나씩 심게 되었다…봄 여름 가을 겨울/새벽에서 심야까지 쉼 없이/자전 공전의 푸른 별에서/민들레 홀씨 같은/희망의 알갱이들을 쏘아 올리며/꿈으로 가는 밭갈이.”(권택명의 ‘꿈의 경작’ 중에서) 

손진은 시인은 “인류 역사와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 담긴 창세기의 장대한 파노라마는 깊이를 알 수 없지만 내 삶에 큰 빛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했다. “지상과 맞닿은 광야의 밤하늘이 찬란하구나/오늘 밤은 별 이야기나 하며 지새우자/이리 더 가까이 오렴, 내 아들아.”(손진은의 ‘한밤의 대화’ 중에서)

이향아 시인의 연작시 ‘편지2-손가락 사이’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시화해 눈길을 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도/당신의 손가락과 아담의 손가락이/알 수 없는 거리로 닿을 수가 없습니다/그 거리의 온도/그 거리의 흐느낌/그 거리의 엄청난 의도/그 거리의 비밀과 미궁/두 손가락 사이의 난해한 암호 문자/야훼여/오늘도 후회로 해가 저물었지만/다시 내일 아침 눈 뜰 것을 믿는/이 어리석음을 어여삐 여기소서.” (이향아의 ‘편지2-손가락 사이’ 중에서) 

하현식 시인의 시는 언어의 밀도와 순결성이 아름답다. “새 떼의 무릎이/작은 여울에 울타리로 자란다…물구나무서는 천 개의 산들이 진다.”(하현식의 ‘이브의 달’ 중에서)  

김지원과 김신영 시인의 시는 현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고요하고도 깊은 응시가 눈길을 끈다. 태초의 신비를 노래하는 박남희 시인, 인간의 교만을 일깨우는 양왕용 시인, 말씀이 주시는 영감으로 시를 쓴 주원규 시인의 작품도 깊은 울림이 있다. 

이번 시집 발간에 구심점 역할을 한 김석 시인은 “12명의 시인들은 성경 속 예수님의 비유 말씀처럼 시적 진실을 우리말로 이미지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리고 소명 안에서 나를 찾고 서로를 받들며 이를 형상화해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의 주제 중심, 영탄 형태 시의 틀을 깨는 일과 신앙시의 새틀을 짜고 또 그 틀을 벗는 일도 누에고치 삶처럼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12명의 시인들은 앞으로 성경 66권을 제재로 신앙시를 써 나갈 예정이다. 내년엔 출애굽기를 주제로 한 시집이 발간된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