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늘 밝은 미소로 노래하는 가수 오하라(47)씨.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그녀는 시각장애인 가수다. 눈앞의 사물조차 구분해내지 못한다.
서른다섯 살 때까지 오씨는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앙이 찾아왔다. 조금씩 시야가 흐려져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망막색소변성증’이라고 했다. 급속히 망막이 파괴돼 시력을 잃는 난치병이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도리가 없다는 판정도 받았다.
불행이 닥치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쫓겨나다시피 이혼해야 했다. 피붙이가 보고 싶어도 제대로 만날 수 없었고, 만나도 앞이 보이질 않으니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번 오씨의 머리를 지배했다.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마지막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하지 못했다. 매일 가슴속으로 울면서 되돌아본 삶은 그녀를 교회로 이끌었다. 스스로를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성경공부를 하면서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때 ‘아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나 낮은 자와 함께하는 예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거죠.”
시각장애인 안마사 교육도 받고, 중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보행 교육도 열심히 받았다. 어느 날 점자교육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와드릴까요?”
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잃은 그녀에게 한 남성이 길을 알려주고 이끌어줬다. 바로 지금의 남편 이태웅(46)씨다.
사업 실패로 방황하던 이씨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햇빛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오씨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첫눈에 반한 것이다. 그렇게 남자는 여자를 매일 길에서 기다렸다. 시각장애에 이혼녀란 꼬리표는 이씨에게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청혼했다.
오씨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건 드라마도 영화도 아니에요.” 그래도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로부터 결혼 허락까지 받아왔다. 이씨의 구애는 바위 같던 오씨를 움직였고, 2014년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은 두 사람에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씨는 사회적기업 ㈜더불어샵에서 근무하며 가수인 아내 오씨의 매니저도 맡고 있다. 아내가 무대에 오르면 메이크업과 의상도 담당한다. 오씨는 KBS 전국노래자랑 ‘오산시 편’에서 대상을 받았고, 그녀를 눈여겨봤던 작곡가의 도움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2015년 11월 ‘당나귀’(당신은 나의 귀한사랑) 등 12곡을 담은 앨범도 냈다. 오씨의 이름 ‘오하라’는 ‘감사하라’ ‘사랑하라’ ‘행복하라’ ‘겸손하라’ ‘노력하라’ 등 다섯 가지 뜻을 담아 지은 예명이다. 오씨는 가수생활로 번 돈 대부분을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노숙인 무료급식센터, 말기암환자센터, 유기동물 후원센터 등에 보내고 있다.
27일 경기도 오산의 한 음식점에서 부부를 만났다. 이씨가 아내의 입에 쌈밥을 넣어주면서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자와 결혼하는 게 꿈이었는데 수지맞은 셈”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오씨가 “자기야 정반대잖아. 나는 눈이 안 보이는데”라고 했다. 오씨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자 남편 이씨가 닦아줬다. “당신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 아닐까 싶어. 가장 아름다운 눈 아닐까 싶어.”
오씨는 “눈이 보일 때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며 “지금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불우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안 보여도 세상을 더 많이 본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오산=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기독교 > 신앙칼럼,뉴스,시,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기암과 투병하며 삶에 시한부 없습니다 -유수영 목사 부부 (0) | 2017.05.03 |
---|---|
다일공동체 1천만번째 밥퍼 봉사 (0) | 2017.05.03 |
야식배달부 폴포츠 김승일 - 미국 명예시민증 받아 (세계 러브콜) (0) | 2017.04.29 |
성경에서 퍼올린 영감의 詩 (0) | 2017.04.29 |
동성애 에이즈 창궐 - 사실이다 (0) | 2017.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