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볼록한 돋보기/ 아버지는 이 확대경으로/ 빛을 모으셨다// 검은 동그라미로 본/ 그 밝은 약속을/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공책에 적어/ 자식들에게 주셨다.’
제9회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류인채(57) 시인의 ‘돋보기’ 중 일부분이다.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9일 시상식에 앞서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류 시인을 만났다. 작품의 소재가 된 아버지의 돋보기와 낡은 공책 한 권을 보여줬다. 공책 첫 장을 넘기니 정성껏 필사한 마태복음 1장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2010년 9월 25일부터 써내려갔다고 명시돼 있었다.
“아버지가 이 돋보기로 성경을 읽으며 필사하셨지요. 우리 여섯 남매에게 이런 공책을 두 권씩 남기고 2011년 12월 28일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공책은 아버지가 둘째 딸인 류 시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시인에게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이요, 시적 영감의 대상이다. 1998년 ‘나는 가시연꽃이 그립다’란 시집을 출간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4년 ‘문학청춘’ 신인상을 받았다. 아버지에 대한 여러 편의 시를 썼고 ‘소리의 거처’ ‘거북이의 처세술’ 등 시집도 잇따라 냈다.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시던 아버지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2년 정도 모시고 살았습니다. 마침 제가 뒤늦게 박사과정을 밟던 때였지요. 벚꽃을 유난히 좋아하셔서 공부를 마치면 함께 벚꽃 구경 가자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쓸쓸함을 노래한 시가 ‘왕벚꽃이 피면’이다. ‘무덤가 왕벚나무 막 꽃봉오리 열리는데/ 왜 꽃이 피면 슬플까요/ 아직도 당신을 보내지 못한 마음이/ 꽃으로 터질 것만 같아요.’
병중의 아버지를 돌보며 쓴 ‘손’이란 시도 있다. ‘기저귀가 흥건하다/ 재채기는 붉고 노란 분(糞)을 분꽃처럼 피웠다/ 아버지를 안아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힌다/ 뼈만 남은 몸을 부둥켜안는다….’
경기도 부천광림교회 권사인 류 시인은 집안의 첫 믿음의 씨앗이다. 남편을 전도했고 30년 가까이 이단에 빠져 ‘예수쟁이’라고 자신을 핍박했던 시어머니를 17년 만에 ‘진짜 예수쟁이’로 만들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친정 식구들도 오랜 기도 끝에 전도했다.
“뒤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아버지가 2005년 뜻하지 않게 뇌진탕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뇌수술을 받고 깨어나셨지만 기억상실과 치매, 수전증을 앓는 등 후유증이 심했지요. 독한 약에 의지할 뿐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아버지에게 성경필사를 권유했지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성경필사를 하면서 아버지의 기억이 차츰 돌아오고 수전증도 나아진 것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신앙시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지 모른다. 류 시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일반시를 쓰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윤동주의 기독교적 시들을 연구하며 석사를 마쳤고 인천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신앙시를 더 잘 써보고 싶어 만학에 도전한 것이다. 윤동주 박목월 박두진 등의 대를 잇고 싶은 소망도 갖게 됐다.
그래서 2년 전 처음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에 공모했고 밀알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두 번째 도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가장 짧은 언어로, 가장 감동적으로 주님을 그린 신앙시를 통해 ‘오직 예수님’이라는 올바른 인생길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남기신 믿음의 돋보기를 보면서 나의 갈 길을 찾은 것처럼 말입니다.”
글=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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