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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회 이야기 /고마운 아내 -임우성 목사

배남준 2017. 1. 25. 10:22

        [나의 목회 이야기] 고마운 아내 기사의 사진


1996년 전도사로 개척교회를 시작한 곳은 남산순환도로 초입 파란유리로 둘러싸인 5층 건물의 3층이었습니다. 9평 공간에 방석을 놓고 3년간 예배드렸습니다. 새벽예배에는 두세 분이 나오셨고, 주일예배에는 14개월 동안 우리 부부와 전도사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목회자가 되겠다는 남편을 돕겠다며 아내는 디자이너 생활을 접고 남대문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일수까지 얻어 예배처소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불황에 장사는 되지 않았고 월세를 감당하기도 빠듯했습니다. 쌀이 떨어져도 내색조차 못했습니다. 아내는 매일 울어서 눈 밑에 습진까지 생겼습니다. 일수쟁이에 몰려 수치를 당하는 날도 늘어만 갔습니다. 아내는 자꾸 쇠약해졌습니다.

언제쯤 이 상황이 변해 주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는 아내에게 저는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왜 믿음이 그 정도냐, 의심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올 수 없다’며 몰아붙였습니다. 장모님의 소천을 계기로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사라졌던 아내는 급기야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먼 바닷가에 가서 빠져버리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말입니다. 며칠 뒤 아내가 나타났습니다. 물가에 갔다 왔다고 합니다. 바닷가는 아니고 찜질방에 갔었다며 이런 말을 들려줬습니다.  

“여보, 한강에서 자살한 사람 가운데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들이 있대. 실연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강물에 뛰어드는 순간에 다시 살아보겠다고 물속에서 돌부리나 수초라도 붙들고 발버둥을 치다 상처가 많이 생긴대. 그런데 빚에 몰려 투신한 사람들은 죽는 게 차라리 편하다 해서 아예 몸이 깨끗하대.”

베드로가 닭이 울 때마다 통곡했다는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아내는 동대문에서 다시 개업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동굴이 아닌 터널이기에 아내는 장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연매출 50억원 규모로 사업이 번창했고 교회는 남산에서 압구정으로 부흥해 이전했습니다. 물론 아내에게 주신 주님의 물질을 통해 이뤄진 일입니다.  

이후 아이도 갖게 됐지요.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의 성민(聖民)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던 어느 수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아내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너 사모 할래, 장사 할래’라고 물으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처럼 단순한 성품의 아내는 사업장을 믿음이 있는 분에게 무상으로 넘겨버렸습니다.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한강을 조망하는 아파트에 살다 아기와 함께 교회로 들어와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성도님들을 만나고 굳건해지는 믿음의 반석을 통해 국제독립교회연합회를 설립하는 데 일조하게 됐습니다.

새벽에 나올 때 비좁아 신발을 제대로 놓을 수 없는 현관에 제 구두가 나가는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봅니다. ‘아, 작은 교회 목회자로 20년째 살아가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인 나를 하나님께서는 세상 관점으로 보시지 않고 존귀하게 보시는구나. 사랑하는 아내를 통해 나를 격려하고 사랑해 주시는구나.’ 그렇게 고백하는 순간, 저는 제일 행복한 목사가 됩니다. 아내는 아직 이 사실을 모릅니다. 

임우성 목사 <압구정예수교회> 

약력=△전북대 법학과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성경적성경연구원 대표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