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색 코트에 갈색 단발머리, 옅은 화장을 한 그가 걸어 들어왔다. 밝은 미소를 띤 얼굴에선 빛이 났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한 카페에서 16일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38·선한목자교회)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1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는 다음 달 27일 개강과 함께 강단에 선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활짝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기독 대학인 한동대는 지선씨에게 원래 각별한 곳이었다. 그는 “오래 전에 김영길 전 한동대 총장의 사모인 김영애 권사의 ‘갈대상자’를 읽었고 간증도 여러 번 들었다”면서 “한동대에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동대를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11월 초 한동대에 세미나를 하러 갔을 때였다. 교문으로 들어서며 고 하용조(온누리교회) 목사가 생각났다. 하 목사는 그가 다시 꿈 꿀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운 분이다. 온누리교회가 6년간 장학금을 지원해 2004년부터 미국에서 석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 목사님은 장학금을 주시면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에 온누리교회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갖지 말라고 하셨어요. 한국교회가 해야할 일이어서 그냥 하시는 거라고요. 한동대는 하 목사님이 사랑하셨고 온누리교회가 후원한 곳이잖아요. 이곳에서 가르칠 수 있다면 하 목사님이 참 좋아하시겠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이번에 임용이 됐어요.”
학생들에게 사회복지정책을 가르칠 예정인 지선씨는 학문 외에도 꼭 전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비전 이전에 세상이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삶을 견디고 버티고 이길 수 있었던 건 하나님 안에서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찾았기 때문이에요. 학생들이 그런 마음을 갖는 데 제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선씨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7월 30일 음주운전자가 낸 7중 교통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고통스런 화상치료와 수술이 이어졌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재활상담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의미 있지만 사회복지 정책이나 시스템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회복지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6월 UCLA(캘리포니아주립대 LA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생의 3분의1을 보낸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그는 일상을 되찾았다. 하나님께서 연애를 허락하시리라는 소망도 갖게 됐다. 하지만 “아직은 연애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다”며 웃었다.
“사고 전에도 제대로 연애를 못해 봤는데, 한창 박사학위 공부를 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왜 내겐 안주시나 하고 답답해 했어요. 이쯤이면 주셔도 될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마음을 비워야 주신다고 해서 비운 척도 해봤는데, 그런 건 하나님이 바로 아시니까 소용없더라고요. 이제는 정말 안주시면 할 수 없지, 더 좋은 것을 주시겠지 하는 마음이에요.”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니가 “넌 사고가 없었어도 시집 못 갔을 거 같다”고 해서 “엄마, 고마워”라며 유쾌하게 웃었다고 전했다.
지선씨는 장애인 재활을 지원하는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를 하며 미국과 한국에서 마라톤도 완주했다. 그 자신도, 어머니도, 주변 사람도 모두 완주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5㎞, 10㎞, 하프 점점 멀리 도전하다보니 어느 새 42.195㎞를 완주할 수 있었다. 이때 ‘스스로 그만두지만 않으면 할 수 있다. 이 길이 맞다면 그냥 가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도 박사과정을 마치고 졸업이 확정됐을 때는 광야에 첫발을 내딛는 느낌이었다.
“어디로 갈지 정해지지 않았으니 취업준비생이 되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광야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게 이런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공부를 마친다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지선씨에게 이 시대 광야에 서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는 말을 부탁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뜻하신 일들이 있으세요. 사람들이나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늦어지면 괴롭지요. 하지만 이건 하나님의 시계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성급해 하지 말고 기다렸으면 해요. 제가 했었던 바로 그 일이에요.”
글=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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