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칼럼,뉴스,시,그림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국민일보) / 정종훈 교수 (연세의료 원목)

배남준 2016. 12. 28. 11:56



[특별기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기사의 사진

-정종훈 교수 -       


최근 CBS는 일부 대형교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돕기 위한 구국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라사랑 엑스폴로 2017’이란 제목으로 2017년 한 해 동안 다섯 차례 기도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논란이 일었지만 CBS의 정정보도로 마무리됐다. 주최 측이 청와대든, 박사모든 어떤 커넥션도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 보도를 보며 머리가 쭈뼛해졌던 게 나만의 과민 반응이었을까.
 
어떤 목회자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고자 했을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박 대통령을 비호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인데 감히 대통령의 죄를 운운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진리의 말씀이 이렇게 오도되는 것을 보며 전율을 느낀다.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돌을 맞을 날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1947년 ‘죄의 문제’라는 소책자에서 죄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범법적인 죄다. 실정법을 위반한 죄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범법행위에 상응하는 형사상의 처벌을 받는 죄다. 둘째는 정치적인 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들이 집단적으로 범한 죄는 국제법에 의해 전범국가로 판결 받아 피해국가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하는 죄다. 셋째는 도덕적인 죄다. 실정법에 어긋난 행위는 아니지만 양심에 거리끼는 행위를 했을 때, 스스로 질책하는 죄다. 마지막 넷째는 형이상학적인 죄다.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 또는 대중에 의해 용인되는 행위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죄다.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결의한 박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헌재는 대통령이 비선조직에 의해 휘둘리며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위반한 것,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것,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것,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 뇌물을 수수한 것 등을 중심으로 심판할 뜻을 내비쳤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의 기본적인 책무를 이행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하위의 형사법으로도 지나칠 수 없는 범법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국가적 범법행위가 사실이라면 단죄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인,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대한민국이 이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과연 국가로서 존립할 수 있을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은 범법자를 용서하라는 뜻이 아니다. 여인과 단 둘이 남았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간음한 죄를 분명 죄라고 지적하셨다. 때문에 사랑의 주님은 그 죄를 반복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여기에서 교훈은 죄를 범한 누구라도 영원한 죄인으로 낙인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나아갈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범법자는 모두 재판을 통해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정의가 서고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 

혹시라도 한국교회가 박 대통령과 관련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운운한다면, 한국교회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반국가적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리 되면,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촛불은 이제 한국교회를 향해서 활활 타오르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살펴야 할 때다. 부정·부패·불의의 세상, 거짓과 불신의 세상, 절망과 어두움의 세상은 역설적이게도 진리의 빛을 간절히 고대하기 때문이다. 불법이 정의의 단죄를 받을 때, 그곳이 바로 빛의 현장이다. 

                                                                                               정종훈 교수(연세의료원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