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전북 진안 마이산 인근 길가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동네 사람들은 ‘길쇠’라고 불렀다. 아이의 엄마와 옆집 오빠가 정분이 난 게 화근이었다. 스무 살 철없는 신랑은 어린 신부를 극심하게 학대했다. 17세에 첫 딸을 낳고 2년 뒤 둘째 아들을 낳은 엄마는 돌도 안 지난 아들을 남겨두고 세살 딸만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뒤늦게 후회하고 아내를 찾아나선 남편은 객지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길가에서 태어난 사고뭉치 ‘길쇠’
졸지에 부모를 잃은 아이는 할아버지 집에서 외롭게 자랐다. 사고뭉치로 자란 소년은 중학교 2학년 때인 1991년 1월 12일 교회 전도사로부터 한 번도 받지 못한 사랑을 난생 처음 받았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꿈을 꾸는 요셉이 됐다. 그해 성탄절 소년은 할머니와 함께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했다. 소년은 광주신학대학을 졸업하고 96년 인천으로 올라와 개척 교회에서 7년간 전도사로 시무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명교회에서 임시 담임목사, 2004년 12월부터 12년간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 부목사를 역임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로 성천교회에서 제5대 담임목사에 취임한 양병길(41) 목사 이야기다. 그는 목사가 되기로 다짐한 지 25년 만에 담임목사가 됐다.
위임목사 감사예배에 참석한 300여명의 성도들은 양 목사 본인의 고백을 통해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를 의심했다. 담임목사의 불우한 어린시절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양 목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온 고향 교회(은총교회) 성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 목사는 7세가 됐는데도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까지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조부는 면사무소로 달려가 자신의 막내아들로 출생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길쇠란 이름을 내밀자 담당 여직원이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해 집안의 돌림자인 ‘밝은 병’, 길에서 태어났으니 ‘길할 길’을 넣어 이름을 지었다.
양 목사는 어릴 때부터 반항아로 자랐다고 했다. 남의 밭 당근과 무를 죄다 뽑아버리고 이웃집 마당에 미사일 폭죽을 터뜨리는 등 몹쓸 짓만 골라 했다고 한다. 부모 없는 서러움을 그렇게 앙갚음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는 이어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태어나서 처음 어머니를 보게 될 기회가 있었다. 외조부 제삿날이 됐는데, 어머니가 외갓집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목이 메어 불렀던 ‘엄마야 누나야’
“엄마와 누나를 그리며 목이 메도록 불렀던 노래가 ‘엄마야 누나야’라는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마을로 왔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를 불렀지요. ‘엄마, 엄마.’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외면했습니다. 아들의 외마디 외침소리를 듣고도 부엌으로 들어간 뒤 끝내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누나도 불렀지요. ‘누나, 누나.’ 역시 동생의 얼굴을 보지 않더라고요. 그 순간 전 배신감을 느꼈고 엄마와 누나를 향한 그리움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양 목사는 누구보다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됐다. 항상 남과 비교해 열등하다는 생각 속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증오심만 마음속에 가득했다고 했다. 결국 심한 도벽증과 거친 욕설, 나쁜 행동,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내 모습을 보고 동네 어르신들은 ‘병길이 저놈은 아비 어미도 없이 자라더니 애가 싸가지가 없어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어’라고 했지요. 손가락질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중학생이 된 길쇠는 더욱 나쁜 길로 빠졌다. 당시 씨름부에 들어가 운동을 하며 나쁜 선배들과 어울리게 됐고, 힘없는 친구들의 돈을 뜯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재미’에 빠졌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는 가출도 자주 했고, 수없이 나쁜 짓을 해 ‘비행 청소년’으로 변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병길이 반은 맡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교회 전도사님은 길쇠를 내치지 않았단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병길이는 먹을 것을 주는 날만 교회에 나간다는 말이었다. 그냥 듣고 넘길 수 없었다. 먹을 것 안 주는 때에도 교회에 나가면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 것이라는 오기로 교회를 매주 나가기 시작했다. 그해 성탄절 전인 11월 초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결정적 결정’이 된 교회 출석
그게 결정적이었다. 전도사님은 한 주도 안 빠지고 나오는 그에게 크리스마스이브 연극에 주인공인 ‘네 번째 동방박사’역을 맡겼다. 주님 음성 앞에 양 목사는 완전 새로운 사람이 됐다. 삶은 180도 바뀌었다. 양아치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때부터 양 목사는 교회 가는 게 최고의 행복이자 기쁨이 됐다. 고향 은총교회는 오전 10시30분 예배를 드렸다. 오전 8시 교회에 가 10시까지 두 시간 동안 교회 강대상부터 예배당 바닥, 바깥마당, 화장실, 사택 마당, 교회 앞 길거리까지 청소했다. 단 한 주도 빠짐없이 6년간.
우여곡절 끝에 광주신학대에 합격한 95년 3월 2일 학교를 가려는데, 이른 아침 할머니가 손자를 불러 당부했다.
“병길아. 목사가 되면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고모 말을 들으니 그것이 아니더구나. 그래서 네가 목사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 꿈에 ‘너는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기꺼이 주의 종의 길로 보낼게.”
할머니는 오직 손자를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다가 지난 4월 천국으로 가셨다. 요양원에서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저녁 7시면 어김없이 기도했다고 한다. 할머니 기도의 응답으로 양 목사는 올 성탄절을 앞두고 성천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양 목사의 신앙철학은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듯이 24시간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사고초려(四顧草廬)’에 담임목사 승낙
대학 졸업 후 96년부터 인천의 개척교회 전도사로 생활했다. 주일엔 전도사, 주중엔 회사원으로 살아야 하는 힘든 시기였다. 신대원에 합격했지만 교회가 어려워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7년 동안 전자회로기판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기본급 52만원에 야근수당이 150만원)을 몽땅 교회에 바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명교회 사역을 거쳐 2004년 12월 꿈에 그리던 새에덴교회 부목사가 됐다. 이때도 양 목사는 평균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청년부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그 자리에서 잠잘 때가 많았다. 다음날 집에 가 옷만 갈아입고 나와 종일 심방을 다녔다. 한 주에 새신자 가족 심방만 35번이 넘었다고 한다.
온갖 역경을 뚫고 일어선 양 목사의 삶과 헌신적 목회 스토리는 입소문을 타고 성천교회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신인균 장로에게 전해졌다. 신 장로는 지난해부터 네 번이나 양 목사를 찾아가 담임목사직을 받아들여달라고 애원했다. 그리고 그 간청은 크리스마스 직전에 받아들여졌다. 길에서 태어났다고 길쇠라 불렸고, 불량배가 되기 직전까지 삶의 바닥을 헤매던 사나이가 담임목사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성천교회는 창립 50주년인 내년을 코앞에 두고 40대 초반의 젊고 패기에 찬 새 목회자를 세웠다. 60년대 말 창립된 이 교회는 그야말로 모래밭에 세워졌다. 가재울뉴타운 사업 후유증으로 혼란을 거듭해오다 양 목사 초빙으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양 목사는 신학생 시절 만든 ‘날마다 10대 영감 체험을 하자’는 슬로건을 담임목사가 된 뒤 다시 교회에 내걸었다. 4대 비전도 구체화했다. 훌륭한 목회자가 돼 장년출석 성도 1만2000명, 주일학교 3000명, 중고등부 3000명, 청년부 2000명의 2만 성도 교회를 이루겠다는 등의 야심찬 계획이 그것이다. 1만명 이상의 주의 종을 배출하며 전 세계적인 후원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도 있다. 세계선교의 90%를 담당하고 전 세계적인 부흥강사가 되어 5대양 6대주에 복음을 전함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종이 되겠다는 것이다.
위임목사 감사예배 후 첫 주일예배를 드리기 전 새벽에 양 목사가 한 일은 교회 앞 도로를 빗자루로 쓰는 것이었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일러스트=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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