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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성경 한 손에 망치 -집 짓는 목사 10인

배남준 2016. 12. 24. 07:35

한 손에 성경 한손에 망치… 디모데, 데모도 되다 기사의 사진

교회건축 현장에서 노동하는 목사들. 지난 12일 강원도 삼척시 소명교회 예배당 건축 자원봉사에 나선 이강선(강원 태백장로교회·왼쪽 네번째) 목사 등이 작업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건축 막일꾼으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전문가 수준이 됐다.




‘오함마’. 건축공사에서 흔히 쓰이는 육중한 망치를 말한다. 영어 ‘슬레지 해머(sledgehammer)’의 일본식 발음이다. 장작 패는 큰 도끼를 연상하면 된다.  

강원도 강릉 동해로교회 천성배(56) 목사는 지난여름 어느 날 오함마에 정수리를 맞아 병원 응급실로 긴급 후송됐다. 강원도 삼척 역둔교회 공사현장에서 위에서 떨어지는 오함마에 맞은 것이다. 교계 후배 목사가 사역하는 미자립교회 예배당 공사 인부로 참여 중이었다.  

함께 작업하던 10여명의 목회자들은 너무 놀라 ‘오 하나님’을 외치며 병원 후송을 도왔다. 일부가 병원으로 쫓아가고 공사현장에 남은 목회자들은 “하나님 제발 천 목사를 살려주옵소서”하고 기도했다.


지난 12일 삼척시내 한 추어탕집. 삼척 소명교회 고진용(45) 목사가 인부로 보이는 5명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교회 장로님이 운영하는 맛집입니다. 우리 교회도 많이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고 목사는 인부들에게 깍듯했다. 그들은 막일꾼 같기도 했고, 건축현장 소장 같기도 했다. 그들 옆에서 소명교회 주재선 사모가 숟가락을 그들 앞에 놓으며 예를 차렸다.  

“오늘은 밤 10시까지는 일해야 마칠 수 있겠지요.” 

나이 지긋한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말했다.  

“본당 공사가 마무리되어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릅니다. 오늘 안으로 사택 문틀을 맞춰야지요.” 

지긋한 남자는 태백장로교회 이강선(56) 목사였다. 이에 답한 이는 ‘오함마 사고’의 주인공 천 목사.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천 목사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쾌활했다.  

“아니 목사님, 얼마나 머리가 단단하기에 그 큰 망치를 무색하게 만듭니까. 망치 체면이 말이 아니네.”

누군가의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즐거운 식탁이었다. 

공사판 인부가 된 목사들  

그날 천 목사는 하나님 도움으로 두피만 뭉개지는 부상을 입었다. 믿기지 않아 서로가 놀랐다. 예배당 지붕에서 떨어진 오함마에 그 정도의 부상은 기적과 다름없었다.  

“저 원래 머리 좋았습니다. 지금부터 나빠진다면 목사님들 때문이라고 하나님께 이를 겁니다. 여러분은 그 사건 나고도 저를 공사판에 나오게 했으니 제 아내에게 미움 살 겁니다.” 

공동체의 식탁은 정이 넘쳤고 따뜻했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소명교회 예배당 건축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각자 작업 위치로 돌아가 자르고, 잇고, 맞추고, 나르고, 쌓고, 바르는 등 몫을 해냈다.  

그 하나는 천 목사요, 그 하나는 이 목사요, 그 하나는 고 목사요, 그 하나는 조점석(49·장성태백교회) 목사요, 그 하나는 한상구(47·정선 용산교회) 목사요, 그 하나는 김종현(43·역둔교회) 목사였다. 또 이들과 늘 같이 일하나 이날 자리에 없었던 그 하나는 노인국(영월 서머나교회) 목사요, 그 하나는 김용호(속초 양무리교회) 목사요, 그 하나는 이종문(삼척 추동교회) 목사요, 그 하나는 황금열(정선 생명나무교회) 목사로 합이 10명이었다.

이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강동노회(강원 동부지역) 목회자들이다. 미자립교회이거나 100명 미만 출석 교인 교회를 이끌고 있다. 소위 시골교회 목사들이다. 

이들은 지난 5월 강원도 지방에 불어 닥친 교회 강풍 피해를 계기로 ‘노가다 형제 목사’가 됐다.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출 15:10)라는 말씀처럼 흉용한 바람은 가난한 역둔교회 예배당을 날렸고, 그 가운데 하나님 뜻이 있어 서로가 연합한 자(롬 6:5)로 만들었던 것이다.

“강풍에 역둔교회 지붕이 날아갔어요. 1970년대까지 똑바로 서 있기 힘든 산비탈 화전마을이었던 곳에 세워진 성전이죠. 한데 막상 도울 방법이 있어야죠. 형편이 비슷비슷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거든요. 물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헌신하자 싶어 달려들었습니다. 그전까진 서로를 깊이 몰랐죠.” 

이강선 목사가 사택 버팀보 위로 미닫이문을 설치하기 위해 에어타카를 쏘다가 ‘연합한 자’가 된 이유를 알려줬다.

“그 산골에 교회가 버텨준 것만도 감사한데 가보니 심난하더라고요. 지붕을 고치자니 벽이 걸리고, 벽을 고치자니 바닥이 걸리고…에라 모르겠다. ‘하나님 다시 지을 테니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하는 심정으로 허물고 기초판부터 다졌어요. 예배당 바닥 장판 걷어내니 물청이더라고요. 사택도 별반 다름없었죠. 태풍만 세 번을 맞았대요. 그래서 10여명의 목사님들이 매일 먼 거리를 마다 않고 달려와 건축에 매달렸어요.”

당시 역둔교회가 가지고 있던 대수선비는 600만원 남짓. 참여 목사들은 교회 야유회 갈 비용을 아껴 지원했다. 이 소식이 교계에 알려지자 자재비가 생겼다. “타일 기술자 부른 거 제외하곤 선후배 목사님들이 매일 출근해 직접 다해주셨다”고 역둔교회 김 목사가 말했다. 그들은 늦봄에 바닥 다지기와 골조작업에 매달렸다. 도시락을 싸들고 속초, 영월과 정선에서 바닷길과 태백산맥길을 주파하며 오갔다. 

동화 ‘강아지똥’처럼 낮은 자  

“지금은 기술자지만 처음엔 다들 데모도(공사장 보조 막일꾼의 일본어 표현)였죠.”

“맞아. 데모도였다가 디모데(바울시대 교회지도자)가 된 거네. 하하.” 

어느 목사가 이렇게 이 목사의 말을 받았다. “목사님, 아재 개그 그만하쇼. 잼 없어요”라고 또 다른 목사가 농을 했다. 이들은 한바탕 웃으며 노동의 피로를 달랬다. 

지난 7월 역둔교회 헌당예배가 올려졌다. 그리고 이들은 곧바로 고진용 목사가 혼자 리모델링 중이던 소명교회 건축 현장으로 달려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건축미션 글로리아팀’으로 불렀다.

이 팀의 공사판 현장 용어 가운데 최대 막말은 ‘개떡’이다. 안전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또 한 치의 오차가 없어야 100년 건축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민감할 때 서로 주의하고자 개떡과 같은 ‘주의어’도 튀어나온다. 서로 “목사님 그런 말 쓰면 천국 못 가요” 하며 웃는다. 

이들은 동화 ‘강아지똥’처럼 낮은 자이고자 했다. 자신들이 개떡이 되더라도 하나님 소명받은 자라면 족하다고 했다. 

                                                                                                 삼척=글·사진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