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최순실 게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지방을 막론하고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고 혼란스럽다. 지난주 토요일(12일) 광화문 일대에 100만명이 운집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초유의 권력형 비리를 규탄하는 대규모 평화집회였다. 대통령의 하야와 퇴진을 요구하는 함성이 청와대 문 앞까지 솟구쳐 올랐다. 18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의 대통령 지지율은 5%, 대통령직 부정률은 90%에 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저 지지율 기록(6%)을 지난 4일과 12일에 이어 세 번씩이나 깼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급격하게 이반되고 있으며,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임기 1년 3개월을 남긴 박 대통령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을까. 하늘 위의 하늘처럼, 대통령 위 비선권력의 실체가 하나둘씩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로 최순실 씨의 총체적 국정농단이 의혹이 아니라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2014년 11월말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비선실세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 했다. 그러다 흐지부지되고 끝내 그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7월엔 비선과의 고리를 잇는 핵심자로 추정되던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과 가족의 비리 의혹을 받고 곤욕을 치렀다. 박 대통령은 7월 21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면서 우 전 수석에게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 비난을 피해가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라고 했다. 우 전 수석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로 간주했다. 그렇게 위세등등 했던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경질되고,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세로 전락했다.
의(義)란 철두철미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에 기초하는 것이어야 한다. 개인의 이해관계에 매여 의를 행할 경우, 그것은 사의가 되고 만다. 반면에 공적 목적을 위하는 의는 공의(公義)가 된다. 박 대통령은 우 전 수석을 공의에 충실한 자로 봤지만, 그 의는 명백하게 공의가 아니었다. 그러니 결말이 좋을 리 만무하다. 공적 시스템에 의해 작동돼야 할 국정이 공의에 바탕을 두지 않았기에 사사로운 이권이 개입하고, 마침내 국정 공백을 낳는 파국에까지 이르렀다. 민간인 최순실은 대통령과 친분관계를 빌미로 사의를 행함으로써 불행하게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장본인이 됐다.
국가에 공의가 부재하면, 죄악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기강이 무너진다. 의인들이 학대받고, 서로 뇌물을 주고받고, 가난하고 약한 자를 억울하게 만들고 만다(암 5:12).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리라 말씀하셨다. 이 의는 공의(公義)다. 하나님의 의는 항상 공적(公的)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사적 이익을 개입시키지 않기 때문에 사의가 될 수 없다. 공의 때문에 박해를 받고, 곤경에 처하며, 불이익을 받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는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은 그런 자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며 향유하는 곳이 아니라 공의와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곳에 있다(롬 14:17).
이 땅 역시 공의로 세워져야 자유와 평화와 환희가 넘치는 나라가 된다. 공의가 무너진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광장에 몰려나와 울고, 거리마다 나와 슬프다고 외치며, 울음꾼을 불러 울게 한다(암 5:16). 한국사회는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 중차대한 시점에 와 있다(암 5:24). 지금 광장의 뜨거운 외침이, 쉬지 않는 촛불의 물결이 그것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강병오<서울신학대 교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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