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칼럼,뉴스,시,그림

애완견의 영혼? 그리고 구원은?

배남준 2016. 11. 19. 10:20

애완견 구원 받을 수  있을까 기사의 사진


“우리 요크셔테리어가 암에 걸렸습니다. 암 치료와 회복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에 사는 Y목사는 최근 금요기도회에서 이런 기도 제목을 전달받았다. 아픈 애완견을 위한 기도 요청이었다. 처음은 아니다. 애완견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한 적도 있다. 새끼를 밴 치와와였는데, 심방을 갔을 때 주인이 순산을 위해 기도를 요청했다. Y목사는 애완견이 아니라 주인인 성도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을 위한 기도였던 터라 오래 기억에 남았다. 

반려동물(애완동물)을 키우는 국내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등장한 이색적인 세태다. 지금은 이색적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달라진 반려동물 역할, 위상도 달라져 

현재 국내 반려동물은 700만 마리로 500만 가구가 키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인 가구와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반려동물의 증가는 핵가족화 영향이 크다. 핵가족화로 약화된 정서적 유대관계를 반려동물을 통해 채우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반려동물의 역할도 달라진 셈이다. 이전에는 사람과 같이 생활하면서 즐거움을 줬다면 지금은 심리적 안정감 및 친밀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노는 대상이라는 뜻의 애완동물에서 동반자, 친구라는 의미의 반려동물로 불리고 있다.  

반려동물의 역할 변화는 위상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인간과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경향이 반려동물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전용 병원, 애견호텔에 이어 반려견 장례업까지 생겼다. 교회에서는 반려견 장례 예배를 드리거나 반려견의 구원을 논하게 될지도 모른다. Y목사처럼 목회 현장에서 뜻밖의 요청을 받는 경우도 잦아질 것이다. 신학적으로 반려동물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반려동물도 영혼이 있는가 

인간과 동물의 같은 점, 다른 점을 보자. 하나님은 동물도 선하게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5절에는 하나님이 땅의 짐승, 가축,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돼 있다. 흙으로 빚은 생명이라는 점에서도 인간과 동일하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인간과 달리 반려동물에는 영혼이 없을까. 이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창조신학연구소장 조덕영(조직신학 전공) 박사는 “성경에선 혼(Soul)뿐만 아니라 영(Spirit)을 지칭하는 단어가 동물에게도 129번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동물에게도 영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합동신학대학원대 이승구 교수는 “인간 외에는 영혼이 없다”며 “동물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유기적인 현상으로서의 생명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려동물도 천국에 갈 수 있나 

반려동물도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복’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구원을 동물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다만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 후에는 동물을 포함한 피조세계에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소장은 “성경은 반려동물의 구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인간이 회복될 때 동물들도 함께 회복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동물의 우열을 가려보면 어떨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게 성경적 견해다. 그 근거로 창세기 1장 28절에서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한 말씀, 시편 8장 3∼8절에서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은 동물에 대해 지배권을 갖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동식물에 대한 사용권 및 처분권을 위임받아 자연 만물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착취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받았다’는 인식도 있다.  

‘동물의 권리와 하나님의 형상’이란 논문을 발표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구미정 전임연구원에 따르면 전에는 이런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됐다는 말은 진리를 이해할 능력, 곧 이성과 지성이 담긴 영혼을 소유했다는 뜻으로 이를 갖지 못한 피조물보다 인간이 훨씬 우월하다는 증거”라고 간주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인간 본연의 이성 능력 때문에 다른 존재보다 위에 있다”고 봤다. 데카르트와 칸트도 “동물은 도구적 가치만 지녔기 때문에 결코 도덕적 존재들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동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각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인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공리주의 철학으로 유명한 벤담은 동물이 처한 위치를 흑인 노예와 비교하면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비판했다. 그는 “차별할 수 있는 근거는 이성을 갖고 말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가 돼야 한다”라며 “동물을 차별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를 배격하듯 단지 인간과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종차별주의도 거부돼야 한다”고 밝혔다. 



“동물은 신앙의 동반자가 아니다” 

최근에는 인간이 동물을 맡아 다스리는 청지기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신학적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 소장은 “무엇보다 창세기 1장 28절의 ‘정복하다’는 말이 잘못 적용됐다”며 “이 구절이 쓰인 당시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이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의지하고 있던 땅을 숭배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인간은 정복자가 아닌 청지기로서 성경에 계시된 창조 질서에 따라 선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말씀 속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재고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인간과 동물은 창조의 제6일에 함께 지어진 피조물로 지구의 안녕과 공동 운명으로 결속돼 있고,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으려는 행위의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만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처럼 인간은 반려동물을 아껴주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소장은 “동물은 인간 삶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그는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 기거할 때도 동반자였고 방주에서 나올 때도 함께였다”고 했다. 그러나 “신앙의 동반자는 될 수 없다”며 “반려동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좋으나 반려동물을 기도의 대상, 장례 집도의 대상으로 확장하는 것은 성경적 해석을 넘어선 집착”이라고 말했다.

글=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일러스트=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