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미국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표심이 꼽힌다. 트럼프 후보는 성추문과 막말 등으로 숱한 논란을 빚어 윤리성을 중시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의 자유주의 성향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클린턴 대신 트럼프를 선택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당선은 한국사회는 물론 교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안된다’ 정서=미국교회에선 역대 선거 중 가장 후보자를 선택하기 어려운 선거라는 목소리가 컸다. 미국교회의 주류인 복음주의 그룹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을 지지해왔다. 특히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동안 미국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등 기독교적 가치를 훼손하는 정책이 다수 통과됐다. 그러나 트럼프의 성희롱 발언 등 추문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인 내에서도 지지를 철회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존 파이퍼 목사는 지난달 중순 트위터 계정을 통해 “트럼프는 물러나야 한다. 힐러리도 마찬가지다. 둘 다 자격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선거일이 다가오자 개인보다는 당의 정책을 투표의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존 맥아더 목사는 지난 6일 주일 설교에서 “미국 사회가 타락한 문화에 편승해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며 “성경적 진리, 복음 선포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격이 있다면 나는 그곳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해 사실상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에서 동성애 반대 활동을 펼치고 있는 티비넥스트 대표 김태오 목사는 “미국은 지난 7년 동안 친동성애, 친이슬람 법안을 추진하면서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시기를 보냈다”며 “미국 기독교인에게 힐러리는 ‘독사과’, 트럼프는 아마도 ‘썩은 사과’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도덕적 흠결은 크지만 정당 차원에선 그래도 공화당이 기독교적 가치와 가깝다고 봤다는 분석이다.
◇한국교회, 평화와 사회통합 책임 감당해야=트럼프의 당선이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트럼프는 장로교 배경의 집안에서 자랐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다. 그러나 동성결혼 합법화와 무분별한 낙태에 반대해왔고 이슬람의 확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국정부와 교회는 오바마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결혼 합법화를 압박해와 상당한 부담을 느껴왔지만 트럼프 정부에서는 이 같은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의 대북한 등 국제정책이 강경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책임은 오히려 무거워질 수 있다. 김정우 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은 “미국이 호전적인 정책을 펴더라도 한반도 평화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각성을 해야 할 때”라며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이 나라, 저 나라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천 세계감리교협의회(WMC) 회장은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우월주의 성향이 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보호주의적이기 때문에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며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와 지속적으로 협력해 미국정부의 일방적 정책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인종주의와 세계평화주의에 역행하는 미국 사회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견고히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안덕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교수는 “성경은 분명히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사회를 지향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에 위배되는 미국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막말 등 자질논란 속에서도 트럼프가 당선된 이면을 봐야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 소망교회 장로인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트럼프의 당선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부의 불평등을 방관한 채 건전한 사회통합을 추구하지 못한 데 따른 현상”이라며 “인간존중, 사랑 등 기독교정신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반성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품어 안지 못하면 사회 속에서 분노로 표출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더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교회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배려와 경제·사회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내고 사회적 약자를 품어 안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주화 백상현 최기영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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