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오른쪽) 광양시 홍보대사 위촉-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까. 백수(白壽)를 앞둔 철학자 김형석은 지난 7월 내놓은 수필집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그 시기를 60∼75세라고 했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기에 사람의 정신적 성장도 황혼이 깃들 무렵 절정에 달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감독 이장호(71)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제야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 것 같다”며 “나는 황금기에 입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장호의 이런 발언은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요즘 삶은 과거와 크게 다르다. 이장호는 1970, 80년대 수많은 히트작으로 충무로를 주름잡은 스타감독이었지만 칠순을 앞둔 2년 전 기독영화 ‘시선’을 발표하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요즘 구상하는 작품 역시 기독영화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 미국 선교사 엘리자베스 셰핑(1880∼1934)의 일대기다.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그는 “나를 거룩한 크리스천처럼 표현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사람은 다 죄인이에요. 그런데 비기독교인은 이 사실을 모르죠. 크리스천만 알아요. 제가 교회 안 다니는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실을 안다는 거예요.”
충무로의 풍운아, 예수를 만나다
이장호의 영화인생이 시작된 건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홍익대 건축미술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장호는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감독 신상옥(1926∼2006)이 운영하는 영화사 ‘신필름’에 들어갔다. 신상옥과 친분이 있던 아버지가 다리를 놓았다.
“아들이 매일 술 먹고 노는 데 미쳐 있으니 아버지가 영화 일이라도 배우라고 하더군요. 막상 영화판에 들어가니 재밌더라고요.”
.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내놓은 건 1974년. 영화는 46만 관객을 동원했다미워도 다시 한 번’(1967)이 세운 한국영화 최다관객 스코어(30만명)를 넘어선 대기록이었다. 하지만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4년 가까이 감독 활동을 접어야했다. 80년이 돼서야 ‘바람불어 좋은 날’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서울 출신으로 불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이장호가 주님을 만난 것도 이때쯤이다. 영화 개봉을 앞둔 어느 날, 서울 명보극장 신우회 모임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하용조(1946∼2011) 목사를 만난 게 계기였다. 설교를 듣고 나니 교회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전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인생의 결정적 순간인데, 까먹은 걸 보면 정말 한심해요(웃음). 아마 메시지보다는 하 목사님이 집전한 예배 분위기에 반한 것 같아요. 저는 찬송가도 노랫말보다는 멜로디에 끌리는, 무슨 일이든 내용보다는 분위기에 매료당하는 사람이거든요.”
당시 그의 지갑에는 부적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90)가 영화의 성공을 기원하며 건넨 부적. 하지만 이장호는 예배를 드린 뒤 부적을 불에 태워버렸다. 명보극장 스크린 뒤에 붙여놓은 부적도 떼버렸다. 그는 “부적을 태운 뒤 영화가 망할까 불안했는데 흥행이 잘되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희한한 건 그를 주님께 이끌려는 일이 이 시기 잇따랐다는 점이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개봉한 뒤 빈민운동가 허병섭(1941∼2012) 목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허 목사는 이장호에게 말했다. “영화 잘 봤습니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면 감독님도 목회자와 같은 일을 하는 겁니다.”
‘어둠의 자식들’(1981) ‘꼬방동네 사람들’(1982) ‘바보선언’(1983) 등 작품성을 갖추고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장호의 신앙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스로 “돈독이 올랐던 시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상업성 강한 영화를 만드는 데 푹 빠졌다.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 등이 당시 작품이다.
예수님과 재회한 건 87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82)의 권유로 다시 교회에 나가면서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성경공부도 시작했고,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니거든요(웃음). 하나님의 섭리를 아주 느린 속도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제 삶도 달라졌죠."
로마서에서 배운 복음
이장호를 처음 만난 건 '시선' 개봉을 앞두고 그가 국내 언론과 차례로 인터뷰를 하던 2014년 4월이었다. '시선'은 해외선교를 떠난 교인들이 이슬람 반군에 피랍돼 배교(背敎)를 강요당하며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이야기다. '시선'은 이장호가 '천재선언'(1995) 이후 1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영화 흥행을 자신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영화가 단기간에 잘되는 건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담긴 작품이니 언젠가는 많은 사람이 다시 찾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화는 개봉 당시 겨우 1만2000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지금까지 영화를 20편 만들었는데 최고작은 역시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흥행은 안됐죠. 악마가 권세를 잡은 세상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기독교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적개심이 팽배한 상황에서 '시선' 같은 영화가 잘되긴 힘든 법이죠. 하지만 언젠가 이 작품은 재조명받을 거예요."
이장호는 서울 청계산 인근에 있는 길교회(김세재 목사)에 출석한다. 직분은 장로다. 성경 66권 중 로마서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8장 5∼6절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시간 날 때마다 성경을 읽어요. 특히 로마서를 통해 영혼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과거에 저는 육체의 문제에만 관심을 뒀어요. 하지만 로마서를 통해 영혼, 나아가 구원과 영생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황금기가 이제 시작됐다고 말하는 건 영혼의 문제를, 주님의 사랑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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