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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개혁을 도운 아내 카타리나 - 수녀원을 탈출한 전직 수녀

배남준 2016. 8. 6. 14:19

                                  [이동희의 종교개혁 500년] 탈출한 수녀와 결혼한 루터의 ‘결혼 개혁’ 기사의 사진

                                      -이동희 연구원 -


지난해 가을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를 방문했다. 간 김에 루터하우스를 둘러 봤다. 입구에 카타리나 폰 보라의 동상이 서 있었다. 뜻밖이었다. 왜 루터가 아닐까.
 
1525년 6월 13일 루터는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16살이나 어린 신부였다. 카타리나는 님브센 수녀원에서 탈출한 전직 수녀였다. 당시 수녀원은 창살에 갇혀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했다. 복종과 규율만 강조되었다. 카타리나는 루터의 글을 읽고 수녀원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탈출을 결심하고, 종교개혁운동을 하던 루터에게 몰래 도움을 청했다. 루터는 상인 코프와 마차를 보냈다. 코프는 님브센 수녀원에 청어를 정기적으로 헌납했다. 탈출은 드라마틱했다. 1523년 부활절에 코프는 카타리나를 포함한 다른 수녀들을 마차에 실은 청어통 뒤에 몰래 숨겨 탈출시켰다. 루터는 당시 수녀원 탈출을 출애굽에 비유했다. 수녀원을 탈출하다 잡히거나 도와 준 사람은 사형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탈출을 했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탈출한 수녀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루터는 정직하고 책임감 강한 신랑감을 골라 짝을 맺어 주었다. 그러나 카타리나만은 쉽지 않았다. 카타리나와 결혼하려 했던 청년이 집안의 격렬한 반대로 결혼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루터가 다른 사람을 소개했지만 카타리나가 반대했다. 카타리나는 루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결국 노총각 루터는 카타리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전직 수녀와 전직 수도사였던 두 사람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주변의 반대와 뒷말이 무성했다. 측근 멜랑히톤부터 반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했다.  

루터에게 결혼은 종교개혁의 일환이었다. 루터는 결혼을 통해 종교적 진리를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 그는 결혼은 신이 창조한 질서를 지키는 길이고, 그것이 신의 명령이라 생각했다. 루터는 식탁담화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만일 결혼이라는 것이 없다면 세상은 황폐해지고, 모든 피조물이 무로 돌아가며 하나님의 창조도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루터와 결혼한 카타리나는 헌신적으로 내조했다. 6명의 자녀를 낳았고, 살림을 도맡아 했다. 작은 살림이 아니었다. 당시 루터하우스는 일종의 기숙대학이자 종교개혁의 본거지였다. 루터 추종자와 학생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기거했다. 카타리나는 집을 개조해 하숙을 쳤다. 그것도 모자라 맥주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녀가 만든 맥주는 선제후의 궁정에 납품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카타리나는 드샜을 것이다. 불같은 성질의 다혈질 루터도 그녀 앞에서는 조용히 인내만을 외쳤다고 하니까. 카타리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남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루터하우스 앞에 동상이 서있을 만했다.    


            세계를 뒤흔든 종교개혁자/ 마르틴루터

나는 루터하우스 입구에 세워진 카타리나 동상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종교개혁의 정신을 생각했다. 그것은 섬김의 정신이다. 종교개혁에는 빛을 받지 않고 뒤에서 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카타리나처럼 살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루터의 설교와 찬송가를 인쇄해 목숨 걸고 전파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세태는 빛을 받는 사람만을 기억할 뿐, 뒤에서 섬겼던 사람들을 기억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업신여기기까지 한다. 카타리나와 같은 헌신적인 사람들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나는 카타리나와 같은 여신도들이 한국의 많은 교회들을 먹여 살려 왔다고 생각한다. 결코 목사 한 사람이 똑똑해서 교회가 번성한 것이 아니다. 루터 당시 교황이나 고위 사제들은 자신들을 먹여 살려 왔던 사람들을 오히려 개돼지처럼 무시했다. 그들은 섬긴다고 하면서 섬김을 받았고, 섬기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예수께서는 목숨까지 내어주시면서 섬기려 하지 않았던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 20장 28절)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국민일보 2016. 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