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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크리스천 김형석 교수 - 부자 권력자 결국 불행

배남준 2016. 7. 29. 11:02

부자 권력자 결국 불행 . . . 희생할 때가 가장 행복



'백년을 살아보니' 펴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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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을 보낸 연세대 인근 안산 자락에서 만난 노학자는 커피를 마시며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귀가 어둡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정정했다. 지팡이조차 없이 걷는 그를 97세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백세시대의 '행복론'을 매주 두어 차례 전국에서 강연하고, 1960~1970년대 낸 저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이 다시금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철학자를 호출하는 목소리가 분주하다. 그를 향한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어떻게 백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는 것. 그 답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백년을 살아보니'(덴스토리 펴냄)를 펴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 늙지 않는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완전하게 성장하는 건 60~75세인데, 그때가 바로 황금기"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 시간은 31년이었다. 은퇴 후 일한 시간도 올해로 31년째다. 60년 넘는 시간을 교육에 쏟아부은 비결을 그는 "노년 이후를 미리 그려보고 준비한 덕분"이라고 했다. "건강의 비결을 많이 묻는데, 특별한 건 없다. 50대 들어서면서는 75~80세에 내가 어떤 인생을 살겠는가라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앞으로 갈 수가 없다. 지식과 건강, 내적인 성장과 인간관계. 네 가지가 모두 인생에 다 필요하다. 종교를 통해서 갖게 된 사명감도 나를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한 것 같다."

그는 매일 1시간의 걷기와 매주 세 번의 수영을 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운동보다도 더 강력하게 그의 삶을 이끌어온 동력은 책이었다. 1920년 평양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가 숭실중학 3학년 때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학교가 폐교되는 일이 있었다. 동급생이던 윤동주 시인은 그에게 "넌 어떻게 할래? 난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만주로 가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1년간 자퇴를 했다. 매일 시골에서 7㎞ 거리의 평양도서관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새벽부터 밤까지 문학 철학 종교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보낸 시간이 그의 인생의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조치대학(上智大學) 철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광복을 맞았다.

1947년 아내와 아이를 등에 업고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남한에 정착한 뒤 중앙중고교에서 7년간 교사를 거쳐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내다 퇴직했다. 그가 80대에 들어선 뒤 가장 힘을 쏟은 일은 '독서 운동'이다.

신작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이 선진국가가 된 건 국민 80% 이상이 100년 이상에 걸쳐 독서한 나라들이다. 50대 이상 어른들이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후대에 보여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는 "대학에서 70세까지 강의를 하면서 늘 읽는 시간과 쓰는 시간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시력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좋은 책을 읽으면 늘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부를 가진 이도, 명예와 권력을 가진 이도 많이 만났지만 행복에는 정답이 없더라. 지금도 누군가가 저기에 진리가 있다고 한다면 따라갈 마음이 있다.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한 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고생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84세에 20년간 투병한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살고 있다. 6남매와 2명의 동생까지 공부를 시키느라 가난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 인생의 짐이었고, 그 짐에서 벗어나자 동반자를 잃은 것. 최근에는 여든을 넘어선 제자들과 자주 만난다고 했다.

그는 "노년이 되면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고 인간관계가 사라진다. 다행히 아직 여든이 넘은 제자들과 만날 기회가 많다. 요즘 내 행복은 이들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자녀들에게는 나를 위해서 마음 쓰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돌아보니 백년해로하는 사람이 가장 고독하지 않더라.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나이 들었다고 해서 혼자 있는 것보다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아흔을 넘은 뒤 스스로에게 종종 물어본다. 죽음에 직면하게 될 텐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죽음이 두렵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새 책을 쓰고 있는데 나올 때면 내 나이 99세일 거다. 그리고 내 제자와 가까운 이들을 마지막까지 한 명이라도 더 돕고 싶다. 남은 건 그것뿐이다."  

               매일경제  2016 7.29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