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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의 ‘나의 목회는 실패’ 라는 말

배남준 2016. 8. 2. 08:28

    


                           [펌]    작성자 박 재권 / 캐나다 주재 기자



       홍정길 목사 "내 동생 하용조가 있는 천국에는..."

                          -남서울 은혜교회 홍정길  원로 목사 -




과거 한국교계에 복음주의 4인방 (고 옥한흠, 고 하용조, 이동원, 홍정길) 목사로 알려진 목사들 중에 하나인 홍정길 목사가 그의 사역을 뒤돌아보며 스스로 실패한 사역이었다고 술회했다. 홍 목사가 CBS “크리스천 NOW”에 초대받아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김종희 대표(뉴스앤조이)와 대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목회 생활 40여 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나온 답이다


기독 언론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실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목회 40년을 뒤돌아보고, 제가 롤모델로 삼았던 미국 대형 교회 목사들을 볼 때, 예배당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인 거 외에 (교회가 세상과) 뭐가 다르냔 말이지. 그런데 제가 그 허상을 좇아왔어요. 지금도 큰 것, 그것뿐이에요. 목표가 잘못 설정됐어요. 그런 점에서 실패예요. 그 사람들이 하는 제자 훈련도 해 보고 선교도 열심히 하고…. 속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모르고 여기까지 왔어요. 다음 세대는 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홍정길 목사는 미국의 대형 교회를 본으로 삼았던 점을 후회했다.


 그는 로버트 슐러 등 한때 교회 성장의 붐을 일으켰던 몇몇 목회자들과 대형 교회를 목표로 두었다. 홍 목사가 목회한 시절은 교회가 문을 열면 사람이 몰려들 때라 좋은 교회를 잘 따랐다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교회를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교회에는 거대한 예배당만 남았고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이나 열매는 남지 않았다는 점이 홍 목사가 가장 가슴 아파한 대목이다.


홍 목사는 자신의 실패를 후배들이 넘어서길 바랐다. 기성세대가 물러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세대가 등장해야 한국교회가 산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남에게 하는 설교가 아닌 자신에게 설교하는 자세,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듯 당신도 나를 따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목사와 제자 훈련은 가짜라는 것이다... 홍정길 목사는 원로가 되서 가장 슬픈 건 자신을 꾸중하는 사람이 없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할 때 바른 길을 일러 주던 벗들을 그리워했다.”고 보도했다.


오늘날 “교회성장” 즉 육신적인 생각에서 목표를 세우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많은 교회들이 정작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들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눈에 띠는 일들에 매달린 결과는 참으로 부끄럽다 못해 처참하다.


 그들 말대로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남아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서 그렇게 자조어린 푸념을 늘어놓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홍정길 목사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했더라면 성경말씀에 순종함으로 적어도 지금처럼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점에서는 긍정적이긴 하지만 오늘날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다수의 목사들에게 홍 목사의 고백이 얼마만큼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대형 교회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성장”한 것이라면 그렇게 알맹이가 없는 건물만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바른 성경이 없이 자신들의 목표를 정하고 사역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변개된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알고 잘못 택하여 잘못된 목표를 삼았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러한 사실을 먼저 깨달은 한 종이 바른 성경인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하여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출간하여 교계에 널리 알리고 그 바른 성경에 기조한 진리의 서적들을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정직한 종들은 깨달은 만큼 성별하여 바른 섬김을 통해서 성경적인 열매들을 맺은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며 오히려 공격하며 거부해 왔다. 누구나 잘 알듯이 약도가 잘못되면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애를 먹는 것은 물론이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힘들다. 대한민국에는 변개된 성경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음으로 인해서 그것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최종권위가 되어 정작 올바른 성경이 제시되었을 때는 거부되고 오히려 공격을 당해 마치 비진리가 진리를 덮어버리듯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사실을 알고 성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가운데 지금 여기저기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회를 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올 것이 온 것뿐이다.


한국교회는 변개된 성경을 가지고 잘못된 교리를 정립하여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실족시켰는데, 그들은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질보다 양적인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누룩”을 복음으로 잘못 가르쳤고, 푸성귀인 “겨자”가 나무가 되어 마귀들의 상징인 새가 모여드는 비정상적인 성장을 교회성장이라고 가르쳤다. 대표적으로 잘못된 이 두 가지 교리로 가르침을 받은 교회는 방향을 잘못 잡아도 단단히 잘못 잡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누룩은 늘 부정적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칠 일간을 너희는 누룩 없는 빵을 먹을지니, 첫날부터 너희 집들에서 누룩을 제거할지니라. 이는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누룩 있는 빵을 먹는 자는 누구라도 그 혼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임이라』(출 12:15). 사정이 이런데도 예수께서 천국의 신비를 비유로 들어서 말씀하신 신약에 기록된 “누룩”을 복음으로 가르치는 바람에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정당화하는 방법으로 써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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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어떤 여인이 가져다가 가루 서 말에 숨겨 넣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 같으니라.”고 하시더라』(마 13:33).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누룩은 정상적인 복음이 아니다. 정상적인 복음은 영을 살리고 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지만 누룩은 부패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물질을 들어 생명을 살리는 비유로 사용하실 리가 만무하다. 이 말씀은 "어떤 여인“ 곧 요한계시록의 창녀인 로마카톨릭이 기독교계에 거짓 교리를 숨겨 넣어 전체를 타락케 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이 나라 교계는 엉터리 교리인 누룩을 몰래 숨겨 들여 온 자들에 의하여 온전한 복음이 오염되어 정상적인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누룩”과 같은 잘못되고 부패한 거짓 교리를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삼가고 조심하라.”고 하시니... 너희는 내가 너희들에게 빵에 관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것임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시니 그때서야 그들은 주께서 빵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를 조심하라 하신 것임을 깨닫더라』(마 16:6,11,12).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누룩에 관한 구절의 문맥은 부정적인데도 불구하고 당시만 해도 듣는 데 둔했던 제자들은 오늘날의 둔한 귀를 가진 교계의 지도자들처럼 오해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풀어 알려 주시니 그때서야 부패한 교리에 대해 경고하신 것을 깨닫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변형된 “겨자나무” 역시 성경에서는 부정적인 열매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로마카톨릭과 한국교회는 이것을 교회성장으로 받아들인다. 『주께서 그들 앞에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그것은 참으로 모든 씨보다도 작지만 자라나면 푸성귀 중에서 가장 커지고,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하시며』(마 13:31,32). 이 말씀에 따르면 푸성귀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겨자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성장해 엄청난 돌연변이 나무가 되어 새들이 몰려들어 거기에 둥지를 틀고, 배설물과 각종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 차게 한다. 분명히 비정상적인 모습인데도 이런 구절들을 억지로 해석하여 교회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여 오늘날 교회가 거대한 건물을 지어 놓고 순수한 양들이 아닌 온갖 새들(마귀들)의 소굴이 되고, 양우리가 아닌 동물원이 된 것이다.


이러한 교회와 그것을 위한 사역을 되돌아보면 후회가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자신이 잘못 저지른 일들에 대한 대책이 없는 자책과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특히나 영적인 일은 비성경적인 교리와 실행으로 혼들을 멸망케 하고 마귀를 승승장구하게 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죄가 대단히 중한 것이다. 홍 목사는 바른 성경을 거부했고, 성경의 진리를 몰랐기에 그런 어리석은 일들로 인생을 허비한  것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변개된 성경과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를 붙들고 있는 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목사들이 어디 홍 목사뿐이겠는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