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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박태준의 겸손한 신앙 - 폐수술 그 속에 가득한 모래분진

배남준 2016. 7. 2. 13:56

-[프레시안에 김민웅 목사가 기고한 추도문 ]


- 살아 생전에 전설

            중국 덩샤오핑의 탄식 "한국의 박태준을 수입해야"


                  [단독] '鐵의 남자' 박태준, 가족들에겐 한없이 따스한 남자였다


  박태준 회장님, 그 정정하고 총기 넘치시는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게 되었네요. 그러나 누가 보아도 범상치 않은 면모와 절도 있는 태도에 배어 있는 강한 의지와 투철한 정신은 이제 후대에게 감명을 남기는 위대한 전기(傳記)가 되었습니다. 생전에도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생애는 공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뿐입니까? 포항제철과 포항공대를 비롯해서 이 땅에 이루어놓으신 그 귀중한 업적은 두고두고 이 나라 역사에 빛나는 자랑스러움과 감사함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공(公)을 위해 사(私)를 뒤로 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평생은 오늘날과 같이 자기가 먼저인 시대에 더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것은 "최고의 공인(公人)"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평생입니다. 

군인, 기업인, 정치가로서만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사셨던 그 일생의 족적은 회장님을 기억하는 이들 모두에게 경탄과 그리움으로 가슴 속에 뜨겁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어디 그저 얻어진 것들입니까? 자신의 몸을 부수고 뼈를 깎고 희생을 한 결과가 아닙니까? 

그렇기에, 십 년 전 폐 수술을 했을 때 미국의 의사들은 그 폐 속에 가득한 모래분진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나이 사십에 포항제철을 세우던 시절, 그 거친 모래바람을 들이키며 온 몸을 던진 그 세월이 남긴 흔적이 아닙니까? 

포항제철 세우며 마신 모래바람 

십년이 지난 뒤, 다시 병마가 재발하여 열어본 폐는 그 모래바람이 속에서는 멈추지 않아 딱딱하게 굳어져가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은 모두 국가를 위해 바치며 살아온 분의 삶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석화된 폐는 도리어 누구도 받을 수 없는 훈장이며,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한 존재에게 우리가 무엇을 빚지고 살아왔는지를 일깨우는 표식이기도 합니다. 

"제철입국(製鐵立國)"의 목표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젊음을 불살랐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민족이 흘린 피의 값으로 세워진 포항제철이라는 인식을 철저하게 하신 회장님은 기업은 무릇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나누어야 한다는 철학을 몸소 행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땅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회장님을 존경하고 귀하게 아끼며 자랑스러워했던 것이 아닙니까?

돌이켜 보면 벌써 20년이 가까운 세월이 되었습니다. 포항제철의 회장 박태준과 목사 김민웅으로 미국 땅에서 만나 그 고단했던 시절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차원의 교우만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생각, 역사에 대한 견해를 깊숙이 나누고 가족 간의 관계도 다져왔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손자들인 큰 따님(진아)의 자제인 재호와 수연이는 제 아이들과 성별도 같고 동갑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평생의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도 모두 다 이런 인연으로 시작된 일이었지 아니었습니까? 역사는 이렇게 대를 이어나가는 걸 보게 됩니다.

고난이 축복이 되는 길을 깨닫다 

▲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뉴시스


정치적으로 낭인(浪人)처럼 되었던 1990년대 초, 회장님은 미국에 오셔서 병고를 겪고 계셨습니다. 그건 일종의 "유배지에서의 삶"이었습니다. 한때 그 힘찼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계셨던 때, 큰 따님은 신앙의 문을 열고 저와 만나게 되었고, 그 믿음과 사랑은 아버지를 위한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워낙이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에 철두철미하신 분이라 종교에 마음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생각은 오산이었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늘의 뜻에 대해 남모르게 깊이 알고자 했던 회장님은 "고난이 도리어 축복"이 되는 길에 눈을 뜨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사모님은, 불교신자로 기독교 신자가 되는 과정이 힘드셨는데, 제가 "사랑의 종교를 선택하는데 불교의 바다를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기뻐하시면서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이셨던 것도 기억합니다. 

지금도 저는 그 모습을 기억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큰 아들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젊은 목사 앞에서 두 분이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하여 성서해설을 경청하면서 성경책에 꼼꼼하게 뭔가를 열심히 기록하시던 모습 말입니다. 그런 두 분의 겸손한 자세로 말미암아 평소 회장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이들이 믿음의 대열에 속속 합류했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 뿐이 아니었지요. 정치적 낭인(浪人)의 삶을 살면서도 연구에 전력을 다해 작은 수첩에 깨알처럼 적어놓은 여러 가지 정보와 연구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저와 이야기를 나누시던 모습도 여전히 큰 감동으로 남습니다. 그 내용 또한 놀랍기 짝이 없었습니다. 정보통신망을 보다 광범위하고 효율적으로 깔기 위한 기반시설과 기술 등에 대한 연구였으니 말이지요. 이 노력은 훗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손을 잡고 정보통신 입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진정한 보수 

세상은 저와 회장님의 만남을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한 사람은 보수인사로 알려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진보인사로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지요. 게다가 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국가의 산업기반을 다지는 일에 평생을 바쳤고, 다른 한 사람은 그가 통치하던 시절과 마주해 젊은 시절 싸웠던 세대의 하나였으니 말이지요.

그러나 회장님과 저는, 공을 앞세우고 사를 뒤로 하는 국가관과 모두가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열심히 나누면서 서로 얼마나 감격적으로 마음을 통할 수 있었는지요. 회장님이 어디 항간에서 보수요, 하는 이들과 같은 보수입니까? 결코 아니었지요.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든 지지하고, 고루하게 썩어 있으면 그대로 앞으로 밀고나가는 진보적 해법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셨습니까? 사회적 공헌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래서 큰따님의 남편이자 사위인 기업인 윤영각 장로에게 사회적 기업을 위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셨던 것 아닙니까. 

저는 회장님을 통해, 국가를 위해 자신을 바친 참된 보수의 존경스러운 분을 만났고, 회장님은 저를 통해 민주화를 위해 진보적 의지로 살아온 이들의 생각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깊게 하면서 회장님은 포항제철을 만들면서 오직 목표 하나에만 매달려 직원들을 다그쳐 혹여 상처를 주었던 일이 있다면 사죄하시겠다고 지면에 공개 고백까지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에 더해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남긴 공적도 있지만, 민주주의를 좌절시킨 대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머리 숙여야 한다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것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논리로 정리되어,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맡아 하게 되는 기초가 되지 않았습니까? 

박태준과 김대중-노무현-김근태 

정치적 낭인의 삶을 청산하기 전, 정치에 대해 가급적 말을 아끼셨던 회장님은 정치에 몸을 담았을 때 보았던 가장 뛰어난 정치인은 역시 "김대중"이라고 격찬을 하셨고, 명석한 젊은 정치인으로 "김근태"를 주목하고 지지하셨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큰일을 해낼 것이라고 "노무현"을 거론하셨습니다. 이 세 분 모두 정치적으로 뭔가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보였던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시기도 시기였지만 보수 인사로 알려진 회장님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말들이었습니다. 참여연대에 관심을 가진 바 있고 아름다운재단에 부동산을 처리한 돈을 기부한 일은 세상이 잘 알지 못합니다. 

이런 인식과 자세가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과의 교우도 만들어 내었던 것이고, 이 땅의 진보운동이 걸어온 길에 대해 남다른 이해와 속 깊은 지지를 지속시켜온 힘이었습니다.

포항제철 건설 당시의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었고, 공장을 지으면서 직원 부인들을 모두 초청해서 포항제철 교육환경을 먼저 만들어 보여주신 대목은 하나의 마을, 하나의 도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남들은 기업인, 정치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자신은 교육자로 길이길이 기억되고 싶다는 말씀도 사실 우리 사회가 잘 모르는 대목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참 많은 빚을 졌습니다. 이 나라가 회장님의 헌신에 감사드릴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전쟁으로 망가지고 가난한 나라가 제철공장을 세운다고 했을 때 세계가 비웃던 시절, 그걸 돌파하고 포항과 뒤이어 광양에 세계적인 제철공장을 세우셨습니다. 그 덕에 우리는 21세기 철기시대의 주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포항공대는 어디 내놓아도 탁월한 인재를 기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공인의 삶이 가야하는 정도를 역사로 만드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나라 민족과 가족들에게 다함없는 사랑을 남기신 회장님, 이제 고이 잠드소서. 살아생전 지고 계셨던 그 모든 짐을 다 내려놓으시고, 평안한 하늘나라에 계실 줄로 믿습니다.

박.태.준, 이 이름 석자는 우리의 가슴에 언제나 빛나는 자랑스러움이 될 것입니다. 위대한 이름으로 조국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