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칼럼,뉴스,시,그림

학생, 교수들 구치소 앞에서 '스승의 은혜' 불러 - 한동대 김영길 총장

배남준 2016. 6. 30. 07:20



       -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14)



 [역경의 열매] 김영길 <14> 학생·교수들 구치소 앞에서 ‘스승의 은혜’ 불러 기사의 사진

2001년 5월 15일 스승의 날 한동대 학생들과 교수, 학부모들이 경주구치소에 수감된 김영길 장로를 위해 카네이션을 들고 ‘스승의 은혜’를 부르고 있다.



감방에 들어서자 뿌연 안개 속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벽을 향해 돌아앉으시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했다. 잠시 후 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제 바로 앉아서 육하원칙에 따라 이름 주소 직업 죄목을 말하시오!” 소위 감방 신고식이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자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것 가지고 구속될 일은 아닌데, 뭔가 잘못된 것 아니야?” “현직 대학총장을 구속하다니” “거, 한동대, 문제 있는 학교야!” 저마다 의견을 말했다.  

감사하게도 감방 동료들은 나를 배려해줬다. 감방에는 두 개의 작은 밥상이 있었는데 감방장은 내 밥그릇을 상 위에 올리도록 허락했다. 청소 당번도 면제해줬다. 밤 9시. 취침 시간. 작은 방에서 35명이 칼잠을 자야했다. 다들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바깥 얘기를 한 마디씩 하자고 했다. 나는 노래로 대신하겠다고 했다. ‘고향의 봄’을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감방 식구들도 나직이 따라 불렀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노래를 부르며 지금은 수몰된 내 고향을 생각했다. ‘내 나이 예순 둘. 나는 지금 어쩌다 이곳에 와 있는가.’ 그날 밤, 나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영혼’이었다.  

수감 나흘째는 스승의 날이었다. 그런데 한 교도관이 다가와 물었다. “총장님, 소식 들으셨나요?” “구치소 안에서 어떻게 바깥소식을 듣겠습니까?” 교도관이 말을 이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 한동대 학생들이 이곳에 온답니다. 지금 교도관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 중이고 긴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걱정됩니다.” 나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우리 학생들은 성숙하고 지혜롭습니다”하며 안심을 시켰다.

얼마 후 총학생회장과 학생 대표들이 면회를 왔다. 나를 보자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총학생회장이 말했다. “총장님, 밖에는 학생들과 교수, 학부모 등 약 1800명이 와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 일로 조금도 분노하거나 동요하지 말고, 강의 시간에 충실히 임하고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그날 오후 그 교도관이 밝은 얼굴로 다시 왔다. “총장님, 학생들이 교육을 정말 잘 받았네요. 가지고 온 카네이션들은 구치소 정문 앞에 수북이 쌓아놓고 갔는데, 떠난 자리에는 휴지 조각 하나 떨어진 게 없었어요. 교도관 생활 20년 동안 이런 감동은 처음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수감 생활 일주일이 지나면서 방식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그들에게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써주면서, 식사 때마다 감사기도를 드리자고 제안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법정에 출두할 때도 한 사람씩 기도를 해줬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했다. 수감 4주째 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대구교도소로 이감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든 감방 동료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기도해 줬다. 나도 울고 그들도 울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5∼7) 

▶ 역경의 열매 [기사 모두보기]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