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과 천상병
1967년 여름의 일이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시인 천상병을 연행해 갔다. 이른바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혐의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친구와의 술자리가 빌미가 된 연행은 평화와 자유를 노래하던 한 시인을 6개월 동안 잔인한 고문과 수감으로 짓누르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간첩단이 되어 시 ‘그날은’에서의 기억처럼 “아이론 밑 와이셔츠 같이…”당한 천상병. 권력은 죄 없는 그를 다시 세상에 내던졌으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어눌한 행동과 말투 그리고 자신과 가족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정신적 고통 외에는 아무런 위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뼈와 살이 평생 간직할 고통을 남기고도 아무런 위로도….
지난 1월 노무현 정권의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동백림사건의 실체는 조작되고 확대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로소 천상병시인에 대한 국가권력의 횡포는 시인되었다. 그 가혹한 여름으로부터 40여년이 지났고 시인은 이미 그가 노래하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지 십여 년이 지난 뒤였다. 권력의 위로는 너무 늦었으나 진실이 역사로서 확인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세상 사람이라면 지금쯤 봄을 그리며 인사동 거리를 느리게 걸어가고 있을 천상병시인.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에 맥주를 한 병씩 마셨다던 시인이 생전에 이 소식을 접했더라면 상쾌함으로 표현하던 그 맥주의 맛은 얼마나 깊었을까? 모르긴 해도 “문디이 자슥들 ……”로 시작하는 호탕한 일갈을 안주삼아 시원하게 들이켰을 맥주 한잔의 깊이는 지난 40년을 거스르는 그윽한 맛이었겠지만 그 좋아하던 맥주 한 모금으로도 세월보다 더 깊이 얼룩진 개인의 삶과 기억의 상흔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으리라….
시인 천상병과 그의 아내 목순옥
시인 천상병을 그리며 들어선 인사동 거리의 한 가운데, 까페 ‘귀천’에서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주저 없이 말하던 시인의 아내 목순옥(69) 여사가 따뜻한 웃음으로 어김없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1973년 오빠의 친구인 천상병과 결혼한 목순옥 여사는 홀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수차례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시인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며 동고동락한 진정한 반려자의 얼굴이다. “그냥 요즘 세대의 남편으로만 생각했다면 살 수 없지요,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앞에 둔다면 부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라는 여사의 말처럼 서울 외곽에 초가집 사글세부터 시작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한결같이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감사하고 감싸주려는 마음으로 지켜졌다. 가난하지만 가난한 사람의 자유로움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그 뜨거운 남편. 아내에게 남편은 아무 가진 것 없이 눈발 날리는 매서운 겨울에도 봄을 그리며 걷는 시인이었고 그 느린 걸음걸이는 ‘이윽고 내일, 불보다도 더 뜨거운’ 평화의 세상을 향하는 굳건한 희망이 되어 현실의 고단함을 지켜주었다. 또한 남편에게 그의 아내는 평화를 쪼며 자유로이 나는 한 마리 파랑새가 되려는 자신에게 사랑이 되고 짝이 되어 날개 없는 새의 날개로서 이 세상 소풍을 아름답게 지켜주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이기주의에 빠져 나약해지지 말고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여사의 당부는 칠십 평생이 담긴 그녀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날을 넘어 더불어 사는 사회로…
모과를 2년 재어서 만들었다는 귀천의 차가 내어지면서 이야기는 다시 동백림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가 생각하는 동백림사건과 천상병은 무엇일는지? “선생님의 겪은 고초를 말로써는 다 못하죠, 그렇게 황당하고 억울한 일들이 어떻게 지식인들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지…” 목순옥 여사는 남편에게 가해졌던 권력의 횡포를 하나하나 기억하면서도 결국에는 권력을 넘어서는 사랑과 용서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나만을 생각하지 않는 다 같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들이 만들지 못한 사랑하며 감싸주는 더불어 사는 사회…”
천상병 시인도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켜보며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지금 그의 시들이 우리 곁에 있고 몇 년 전부터 연극과 문화제 등을 통해서 그의 삶과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와 인사동 귀천이 있기에….
귀천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여사는 책을 한 아름 안겨주신다. 그 책 속에는 40년 전 잔인한 여름밤의 악몽은 오간데 없고 평화를 쪼며 나르는 파랑새의 시들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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