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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외치던 철학자- 니체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배남준 2016. 1. 31. 09:56

         생성과 가상에 근거한 니체의 미학

 

 

 

 

19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이자 작가. 생(生)철학과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손꼽히나 후일 파시즘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해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독특한 사상뿐 아니라 기존의 철학 문법을 깬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정신이상으로 50대에 세상을 떠난 개인사로도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끊임 없이 인용되는 위인이다.

1844년 프로이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어려서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고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여동생과 함께 자랐다. 어머니의 과보호와 할머니의 권위 속에서 아버지와 강한 남성상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음악에 관심이 대단해 교음악을 작곡할 정도의 실력을 쌓았으며 고전어와 독일 문학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해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고 이듬해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 이 무렵 쇼펜하우어에 심취하면서 철학적 사유를 시작했고 류마티즘 등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염세주의와 칸트 철학을 파고 들었다. 스물 셋에 군에 입대했으나 낙마로 1년 만에 제대하고 1869년 바젤 대학의 고전문학원 교수가 된다. 이 무렵 작곡자 바그너를 알게 되어 철학과 음악에 대해 교류하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건강이 악화되면서 니체는 서른 다섯 살인 1879년 결국 강단을 떠났다. 이후 10여 년 간 글쓰기와 철학적 사유에 전념했으나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고 1893~1894년 무렵에는 사람을 알아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1900년 바이마르의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쳤다.

니체는 독일에서 전집이 나왔을 만큼 수 많은 저작을 남겼다. 첫 철학저서인 ‘비극의 탄생’ (1872)를 시작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 ‘아침놀’(1881), 그의 대표작이라 할 4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선악의 저편’(1886), ‘도덕의 계보’(1887), ‘바그너의 경우’(1888), ‘우상의 황혼’(1889),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자전적 글 ‘이 사람을 보라’(1889) 등이 있다. 그가 남긴 유고는 현재도 발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