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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구원의 밀알 / 이승만의 한성 감옥

▲ 죄수복을 입은 이승만(왼쪽끝)이 기독교를 전도하여 개종한 전직고관 양반들과 자제들. 앞줄 왼쪽부터 강원달, 홍재기,유성준, 이상재, 김정식. 뒷줄 왼쪽부터 안명선,김린, 유동근, 이승인(이상재아들), 무명의 소년(부친대신 복역중).ⓒ연세대이승만연구원.  수천 만 구원의 밀알이 된 이승만의 한성감옥​김성욱 /리버티헤럴드 대표​고난이 꼭 저주는 아니며 형통이 반드시 축복은 아니다. 역사적 거인의 고난은 오히려 수 천만 구원의 축복이 되기도 한다.이승만은 1899년 24세 때 고종 폐위(廢位) 사건에 휘말려 사형(死刑) 선고를 받았다.어릴 때부터 신동과 천재로 불렸던 그였다. 협성회의보, 매일신문. 제국신문을 창간해 차세대 리더로 이름도 날렸다.2년 전 배재학당 졸업식 땐 조선의 고위직 관료와 서양의 선교..

이대 김활란 초대 총장의 신앙과 유언

606 × 606 이미지 내 검색 -김활란 박사 - 방문 김활란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단순한 양육자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어려서부터 ‘선비 같은’ 아버지 보다 ‘장부 같은’ 어머니에게 각별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그 자신 기독교 신앙을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았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선이 굵은 여장부’형의 어머니의 결단으로 그의 집안 전체가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그런 어머니에게서 결단력 있는 ‘여장부’의 기질을 전수 받았던 것이다. 김동길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박또라 할머니는 보통 어른이 아니었다. 부산 피난 가 있을 때와 서울에 환도한 직후 한동안 집에 모셨던 일이 있는데 그 철저한 신앙생활은 그래도 열심이었다고 자처하던 우리 집 식구들을 모두 무색케 하였다. 90이 다 되신 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