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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사람 지은 하나님, 친히 생기 불어넣어 영적존재로

배남준 2020. 6. 9. 10:16

류응렬 목사의 창세기 산책 <5>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지난해 6월 교회 체육관에서 열린 여름성경학교에서 공동체 놀이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흙으로 지었다는 것은 인간의 시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무렇게나 밟히는 게 흙입니다. 인간 존재를 귀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신 그분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인간은 흙과 같은 존재로 남을 뿐입니다. 다른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호흡을 갖고 있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입김으로 비로소 생령이 됐다는 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존재의 기반이 흙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가 존재하는 진정한 원인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흙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 거룩한 생명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진흙에서 비롯된 자신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호흡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겸손한 자세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실 때 인간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뿐만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만드셨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생명을 부여하는 원인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인간의 권리와 특권은 무질서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한 가지 조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특징입니다. 모든 것을 누리도록 창조된 인간이지만, 하나님과는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존재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엄중한 명령은 인간과 하나님의 경계를 명확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결정을 내리시는 분이고 인간은 따라야 할 존재입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을 전제군주처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하나님은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이 범죄할 가능성도 없고 죄지을 근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격체로 만드시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볼 때마다 인간에게는 감사와 경계가 함께 일어나야 했습니다. 동산의 모든 것을 먹으라고 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라는 경계심도 가져야 했습니다. 선악과는 감사하는 마음뿐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된 자신을 인식하는 통로가 돼야 했습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알리는 확성기였습니다.

경작하고 지키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위대한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다음에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는 일입니다.(창 2:15) 인간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타락의 결과가 아닙니다. 건강한 노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인간은 놀거나 일 중독자가 되도록 지음받은 것이 아니라 즐겁게 일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타락 후의 노동은 의지와 관계없이 해야만 하는 의무가 돼버렸습니다.

‘경작하다’는 히브리어로 ‘아베드’입니다. 이 말에는 땅을 경작하거나 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출 3:12) 하나님이 부탁하신 동산을 경작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은 여러 면에서 성전을 보여줍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이며 하나님과 만나는 장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땀 흘려 건강하게 일하는 것은 마치 성전에서 예배를 섬기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맺으신 결혼

결혼 제도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에 근거한 제도입니다.(창 2:24) 결혼에는 세 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첫째,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은 한 가정을 향한 새로운 출발인 동시에 가장의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둘째, 남자가 여자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혼의 본질적 의미를 보여 줍니다. 결혼이란 하나님 앞에서 남편과 아내가 언약 관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언약 관계를 보여줍니다.(호 2:14~23, 엡 5:22~32)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시듯, 사람들은 하나님이 짝지으신 결혼 관계를 함부로 파기할 수 없습니다. 신앙적 연합이 일어난 후에, 남녀가 한 몸이 됩니다. 이것이 셋째 과정입니다. 진정한 결혼이란 육적인 결합보다 영적인 연합이 우선입니다.

결혼이란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자유를 말살하는 족쇄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유란 결국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종일 뿐입니다.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