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천국과지옥

천국 그 모든 것 - 로버트 제프리스

배남준 2020. 4. 14. 13:32

[신간안내]"천국은 어떤 곳인가?" 『천국, 그 모든 것』 로버트 제프리스 | 생명의말씀사 


본문에서

그가 고난을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으로 일컫는 이유는 그것을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 천국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올바르게 바로잡고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켜주실 것을 보장하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면 우리의 삶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알콘은 “천국을 옳게 의식하면 삶의 무게 중심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획기적으로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것이 천국의 소망이다. 장차 모든 피조물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것, 곧 죄의 강력한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 천국을 기다리는 태도, 곧 기대감으로 기다릴 것인지 불안감으로 기다릴 것인지, 천국을 생각하며 살 것인지 천국에 무관심한 채 살 것인지가 현재와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하는 일이 천국에서 영원히 크게 울려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_ 1장 미래의 천국이 오늘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 아버지 집”은 우리의 상상으로 빚어낸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실제 장소를 뜻하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곳” 또는 “거처”로 번역된 헬라어 ‘토포스’는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세 차례 사용되었다. ‘지형’(땅의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특징을 세부적으로 묘사한 것)을 뜻하는 영어 ‘topography’가 이 말에서 유래했다. ‘토포스’는 신약성경에서 거의 항상 ‘점유할 수 있고,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나타낸다. 도시나 지역을 가리킬 때도 있고 요한복음 14장 2-3절처럼 집이나 방 같은 개인적인 거처를 가리킬 때도 있다. 천국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단지 ‘토포스’만이 아니다. 예수님은 또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2)라고 말씀하셨다. “거할 곳”으로 번역된 헬라어 ‘모네’는 ‘거주지, 숙박소, 집’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용어들은 모두 물리적인 현실을 묘사한다. _ 2장 천국은 실제 장소인가, 아니면 마음의 상태인가?

 

어떤 면에서 보면 임사 체험 이야기는 자신에게 닥친 죽음의 현실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때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죽음 너머에 희망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부인해야 옳을까? 더욱이 임사 체험을 하고 나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임사 체험을 하고 나서 더욱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또 어떨까? 그들이 새로 발견한 열정을 무시하는 말을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 우리는 임사 체험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즉 임사 체험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모순되는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지 자아를 높이는지, 경험자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게 되는지 아니면 그저 또 다른 경험을 추구하게 되는지를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천국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평가할 때는 다음 일곱 가지 원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_ 3장 이미 천국에 가본 사람들이 있는가?

 

하늘과 새 땅이 신자들의 영원한 거처인 것처럼 불신자들의 영원한 거처는 (성경에서 ‘게헨나’로 표현되는) 불못이다. 아울러 신자들이 셋째 하늘에 일시적으로 머물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것처럼 불신자들은 음부에 일시적으로 머물면서 영원한 불못을 기다린다. 그러나 셋째 하늘이나 음부는 죽은 자들이 단지 중립적인 상태로 ‘가만히 기다리는’ 장소가 아니다. 음부는 불신자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일 뿐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신자들이 죽는 순간에 즉각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는 의식으로 큰 위로를 느끼는 것처럼 불신자들도 죽는 순간에 즉각 하나님과 온전히 분리되는 무서운 고통을 맛본다. _ 4장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즉시 천국에 가는가?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발견할 수 있다. 부자는 음부에 도착하는 순간, 즉시 자신의 고통과 천국에 있는 나사로의 기쁨을 의식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일부 신학자들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와 같은 종파들이 죽는 순간에 즉시 의식이 멈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때로 ‘영혼 수면설’로 일컬어지는 개념이다. … 말씀에 따르면 천국 시민들은 죄인들의 구원을 기뻐한다. 이는 그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론 각 개인이 세상에서 행하는 구체적인 행위(즉 그리스도의 구원 초청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까지 모두 알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만일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지옥에서 밤낮으로 영원히 고통당하고 있음을 안다면, 하나님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한 새 하늘, 새 땅을 예비하신다고 한들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이나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것을 아는 것과 천국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대답이 세 가지 있다. _ 6장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아는가?

 

바울 사도는 부활과 새 육체의 본성과 관련해 자연스레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대답을 제시했다. … 9ㆍ11테러 희생자나 폭발한 비행기 탑승객들처럼 사고나 재난으로 육체가 완전히 파괴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또 죽을 때 장기를 기증한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바다에 흩어져 물고기 밥이 된 육체나 장기가 절단된 육체와 같이 온전하지 못한 육체들이 하나로 합쳐져 본래의 소유주에게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신학자 장 칼뱅은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하나님은 모든 요소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땅과 불과 물에게 파괴한 것을 내놓으라고 명령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으실 것이다.” _ 7장 천국에서 서로를 알아볼까?

 

수박씨가 수박을 맺으려면 먼저 땅속에 묻혀 그곳에서 죽어야 한다. 부활도 마찬가지다. 죽은 인간의 육체는 땅속에 묻힌 ‘씨앗’과 같다. 생명을 잃은 육체는 부활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더 큰 ‘수확’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왜 그럴까?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고전 15:36)라는 바울의 말에 주목하라. 그는 우리의 옛 육체가 영원한 삶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고 말했다. …부활한 육체는 새로운 것, 곧 수박처럼 월등히 우월한 육체일 것이다. ‘수확물’이 ‘씨앗’보다 월등하지만 그 둘은 서로 비슷하다. 세상의 육체와 하늘의 육체는 서로 유사성이 있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다. 성경은 부활한 신자들의 육체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한다(요일 3:2).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를 유심히 관찰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어떤 육체를 얻게 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_ 7장 천국에서 서로를 알아볼까?

 

우리는 각자 우리 자신의 집, 즉 우리의 삶을 건설하는 과정에 있다. 신자의 삶을 떠받치는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일단 터가 놓인 후에는 어떤 재료를 선택해 어떤 삶을 건설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신자들은 믿음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을 선택하거나 “나무나 풀이나 짚”을 선택해 삶을 건설할 수 있다(고전 3:12). 그리스도 앞에 서는 날에 우리의 집, 곧 우리의 삶은 불 시험을 거치게 될 것이다. … 불 시험과 같은 예수님의 심판을 견뎌낼 수 있는 길은 영구적인 재료를 사용해 우리의 삶을 건설하는 것밖에 없다. 이익이나 권력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건설하는 것은 짚으로 된 집을 건설하는 것과같다. …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든 측면이 영구적이지 않고 일시적이라면 그분의 거룩한 불길에 모조리 불타 잿더미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금),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을 건설하는 것(보석)은 철과 대리석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 삶은 예수님의 불 같은 평가에도 능히 견딜 것이다. …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조심스레 다루며, 영원한 가치를 지닌 행위와 동기로 삶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